[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새누리당이 '박근혜당'으로 가는 9부능선을 넘었다. 먼저 '박근혜의 경제 가정교사'로 불리는 친박(친박근혜) 이한구(대구 수성갑) 의원이 9일 신임 원내대표로 뽑혔다.
정책위의장도 친박인 진영(서울 용산) 의원이 차지했다. 친박 인사들은 오는 15일 당 대표 경선 구도에서도 우위다.
결국 새누리당은 완벽한 '박근혜 체제'로 재편될 공산이 크다. 이런 흐름은 대선 가도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 크게는 새누리당 전체에 부메랑이 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한구 원내대표의 당선이 결과적으로 박 위원장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같은 맥락이다.
박지원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10일 라디오 방송에서 "이한구 원내대표가 국회 현안을 일일이 박근혜 위원장에게 결재받으면 안 된다"는 말로 새누리당의 '박근혜 체제'를 비판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같은날 라디오에서 "당 대표든, 원내대표든 얼마나 사람들이 포용적이고, 또 이 당을 위해 헌신하느냐, 국민을 보고 정치를 하느냐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며 '박근혜 사당화' 논란을 경계했다.
그는 전날 원내대표 당선 연설에서도 당이 지나치게 박 위원장 중심으로 흐를 것이라는 안팎의 우려를 의식한듯 "제 귀는 확실히 '자연산' 소통의 수단으로 쓰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의 이런 주장에도 우려는 여전하다.
현재 당 대표 경쟁에서 1ㆍ2위를 다투는 황우여(인천 연수) 후보와 이혜훈 후보 가운데 누가 당 대표로 뽑히든 새누리당은 '친박 당 대표-친박 원내대표-친박 정책위의장' 체제로 굳어진다.
당의 정책적ㆍ정무적 지휘라인이 '박근혜'로 점철되는 셈이다. 대선을 위한 지역 안배도 흐트러질 수 있다.
황 후보 지역구가 수도권이긴 하지만 그는 '수도권 대표주자'보다 '범친박 중진'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역시 친박인 이 후보는 원외 인사라는 점이 다소 부담이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떨어진 남경필(경기 수원병) 의원이 대선에서의 지지기반 확장성을 강조하며 '수도권의 젊은 원내대표론'을 주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누리당이 수도권과 젊은층에 취약하다는 건 지난 총선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원내대표 결선투표에서 쇄신파인 남 의원이 66표를 얻어 이 원내대표에 6표밖에 뒤지지 않았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쇄신과 계혁에 대한 의지, '박근혜로의 쏠림'을 경계하는 심리가 당 내부에서부터 확인된 셈이다.
설 자리를 잃게 된 비박(비박근혜), 특히 친이(친이명박) 주자들의 반발이 커지리라는 점도 관건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친이계 좌장 이재오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경선룰 등을 둘러싸고 박 위원장이)'나 홀로 가겠다'고 하면 그때 가서 심각하게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또 "(친이 조직은) 다 살아있다"며 "다 소외돼서 한숨 푹푹 쉬고 주먹 불끈 쥐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의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는 비박 세력이 배제되면 안 된다는 경고다.
이재오ㆍ정몽준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 등 비박 주자들의 지지율은 0~3%대에 머문다. 미미한 지지율이지만 박 위원장 입장에서는 방관하기 어렵다.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5일 발표한 대선후보 양자대결 가상 여론조사에서 박 위원장(47%)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2%)을 불과 5% 차이로 어렵게 따돌렸다. 이나마도 7개월만에 처음 안 원장을 앞선 것이다.
비박 또는 친이 주자들이 '박근혜 사당화'를 이유로 결집하고, 새누리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후보들의 화학적 결합 속에 '당내의 이벤트'로 치러지지 못하거나 친이 조직이 지지율을 빼가면 박 위원장의 아슬아슬한 리드가 깨지는 결과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지나치게 박 위원장 중심으로 당의 판이 짜이는게 무엇보다 박 위원장 본인에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의원들이 원내대표 투표때 '박근혜'라는 상수가 너무 압도적이라서 계산기를 제대로 돌리지 못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김효진 기자 hjn2529@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