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아, 저詩]김소월 '개여울'

시계아이콘00분 31초 소요

당신은 무슨 일로/그리 합니까?/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파릇한 풀포기가/돋아나오고/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가도 아주 가지는/않노라시던/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날마다 개여울에/나와 앉아서/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가도 아주 가지는/않노라심은/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이 시의 문제는 '가도'에 있다. '가기는 가도'를 줄인 이 짧은 표현은, 애써 무심하려는 개여울 여인의 심경을 교묘히 노출시킨다. 그가 간다는 사실은 입 안에 담기조차 끔찍한 일이기에, 얼른 내뱉어 버리고는, '아주 가지는 않겠노라'는 연인의 다짐을 거기에다 힘 주어 갖다 붙인다. 그런데 세월이 가도 가버린 사람은 올 기미가 없다. 개여울 여인은 문득 깨닫는다. 아주 가지는 않겠노라? 아하. 그건 다시 오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으니, 만나지 못하더라도 영영 잊지 말자는 얘기로구나. 아주 가지는 않겠노라는 그 말은 그러니까 아주 갈 수 밖에 없다는 뜻이었구나. 다만 함께 흘러가지 않은 여기 이 마음만으로 내내 그리워하며 살자는 뜻이었구나. 흘러갔으나 흘러가지 않은 옛 사랑. 그 개여울의 사랑을 나 또한 하염없이 생각하며, 이 갑갑하고 슬픈 시를 다시 읽어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