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보도 좋아하네/꽃 좀 봐/열네 살 선희도 좋아하네/꽃 좀 봐
■ 3월30일은 꽃놀이 가기 좋은 날이다. 여자들 마음은 더 생숭생숭이다. 꽃 좀 봐. 그건 치레가 없는 소박한 영탄이다. '좀'이라는 말 속에는 꽃시절의 숨가쁜 호흡을 잠깐 고르며,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어찌 나 혼자 보겠느냐는 귀여운 청유와 간절한 탄복을 쉼표처럼 뱉어내는 맛이 있다. 저 자연 앞에서, 저 아름다움 앞에서, 저 시절 앞에서, 저 나부끼는 시간의 화냥끼 앞에서, 인생 바닥까지 다 겪은 갈보나 이제 막 초경을 시작한 열네 살 선희까지 모든 여자, 모든 사람이 평등해진다. 열네살 선희가 먼저 나온 게 아니라 갈보가 먼저 나왔다. 그래야, 시의 기분이 툭 터지는 걸까. 감정이라고는 이제 말라버렸을 것 같은,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은 것이 없는 알몸 인생도, 꽃을 보고 똑같은 감탄을 한다는 발견은, 일견 쉽지만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 여운으로 이어진다. 열네 살 선희는 사실 이 짧은 시 속에서도 군더더기다. 갈보까지 좋아하니 누군들 안좋아하랴. 그러나 그 순정의 소녀가 등장함으로써 꽃 앞에 나부끼는 실존의 평등이 훨씬 힘있어졌다. 꽃 좀 봐. 그녀들 말을 듣고 나도 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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