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비> 9회 KBS2 월-화 밤 9시 55분
까칠한 서준(장근석)과 명랑하고 씩씩한 하나(윤아)는 인하(정진영), 윤희(이미숙)와는 다른 캐릭터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누구보다 아버지, 어머니인 인하와 윤희의 32년 전 사랑에 얽매여있다. “첫사랑은 믿지 않는다”는 서준의 가치관은 알고 보면 인하의 지독한 첫사랑으로 상처 받은 어머니 혜정(유혜리) 때문에 생긴 방패이고, 윤희의 첫사랑이 이뤄지길 바라는 하나는 윤희를 다시 찾아온 인하를 낭만적이라고 생각할 만큼 엄마의 첫사랑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다. 캐릭터부터 이미 32년 전 사랑에 구속된 이들이 9회에서 관계의 결정적 순간을 맞이하는 계기도 결국 인하와 윤희의 사랑이다. 서준은 혜정으로부터 “널 가지지만 않았어도 이 불행한 결혼 시작하지도 않았을 텐데”라는 말에 상처를 받은 후 하나를 만나 키스를 하고 지지부진한 ‘밀당’을 끝낸다.
<사랑비>가 시종일관 첫사랑의 이야기를 그려가는 만큼 이런 전개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2012년에 만들어가는 첫사랑조차 지극히 전형적인 방식으로 그려진다는데 있다. 서준은 고백 후 “난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싸우기만 해서 아는 것도 없고”라는 하나의 말에 토라지고, 하나 또한 노골적으로 서준을 좋아하는 미호(박세영)의 등장으로 질투 아닌 질투를 하며 둘이 여행을 다녀왔다고 오해한다. 서준과 하나는 인하와 윤희의 운명적인 사랑을 증명하는 자식들이기도 하지만, 그들 자신의 첫사랑을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세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캐릭터는 여전히 32년 전 사랑에 매여 있고, 그들이 나누는 사랑은 진부하다. 첫사랑은 운명일 수 있지만, 운명이 만들어지는 방식까지 진부할 필요는 없다. <사랑비>는 32년을 뛰어 넘어 인하와 윤희가 아닌, 서준과 하나의 사랑까지 전개해야할 이유를 더 확실하게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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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한여울 기자 six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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