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6개월 박원순 서울시장, 왜 ‘소형평형 확대 정책’ 꺼내들었나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친절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에게 서울시장이라는 자리의 부담감은 어쩔 수 없는 듯 했다. 시민운동가 시절과는 또다른 무거운 직책이어서인지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6개월이 굉장히 오래된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박 시장은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것이다. 서울시 업무가 복잡한데다 몰입을 해야 하는 일이다보니 10년은 지난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집무실 책상 뒷편에 빼곡하게 쌓인 파일들이 그런 소회를 반증하는 듯 했다. 족히 100개가 넘어보이는 파일더미는 제각각 다른 현안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100여개의 중요한 사안들이 박 시장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만드는 데만 며칠이 걸릴 수 있겠다 싶은 파일을 박 시장은 직접 만든다고 했다. 스스로 이슈 관련 자료들을 정리해야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이슈는 박 시장의 의지에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기도 한다. 도시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시도, 즉 뉴타운과 재건축 등의 방향에 대한 '리모델링'에서부터 복지, 문화 등에 이르기까지 서울시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이 오롯이 박 시장이 떠안아야 할 숙제다. 박 시장은 이런 숙제를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한국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 풀어갈 계획이다. 선입견이나 배타적인 방향이 아니라 열린 마음으로 의견을 수렴하다보면 해결점이 보일 것이라는 희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급한 업무협의를 막 끝낸 듯 손님과 함께 집무실을 나오다 마주한 박 시장은, 질문마다 주저하지 않고 미리 준비한 듯 거침없이 대답했다.
-취임 6개월이 지나면서 수많은 현안이 닥쳐있다. 가장 급하게 처리해야 될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임대주택 공급, 채무감축 등이 꼽힌다. 하지만 어느 하나 쉬운게 없다. 주택정책도 그 중 하나다. 아직 시민들은 못 느끼겠지만 매일 고민인 것이 바로 수재(水災)다. 여름 한 철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수방도시 서울'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가 고민거리다. 하지만 (무엇이든) 의견도 엇갈리고 복잡하다. 게다가 돈도 많이 든다. 한양도성을 복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면서 관광은 물론 산책하는 시민에게는 운동 효과도 주어져 의료비용 예방 차원이 된다. 더 나아가 마을 활성화나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다. 현재 사업단을 마련해 방안을 모색 중이다.
-뉴타운 출구전략에 대해 논란이 많다.
▲(뉴타운) 안하겠다는 것도, 모두 해제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공공이 개입해 본인이 부담할 비용을 알아보고 그에 대해 투표를 하자는 것이다.
-소형 주택 확대를 강하게 주장하는 이유는.
▲재건축 아파트는 물론 신규 분양 아파트도 다운사이징 흐름에 맞춰 건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형 평형 선호는 사회적인 추세다. 재건축 소형 평형 확대안에 대해서는 입장을 곧 내놓겠다. 현재 주민들을 만나며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다만 서울시 논의 과정에서 정리되지 않은 사실들이 밖으로 나가 시민 여러분을 혼란스럽게 한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국민주택 규모에 대한 조정도 언급했는데,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꿔야할 것은 통계다. 엉터리 통계, 잘 잡히지 않는 통계가 많다. 같은 통계라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진다. 한국 사회의 인구학적 센서스를 보면 굉장한 변화가 있다. 서울시민 50%가 1~2인 가구다. 주택은 물론 가구, 문화, 삶의 형태까지 바뀌고 있다. 이런데도 40~60평대를 지으면 되겠나. (SH공사가 지은) 은평 뉴타운 690가구는 4년째 그대로 놀고 있다. 관련 부서에 모든 방법을 강구해내라고 지시했다. (계획 당시) 통계를 안 본 탓이다. 세상의 변화를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택사업 계획의 경우 4~5년전에 미리 세우다보니 내다보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인구 변화 추세는 미리 알 수 있다. 은평에 40~60평 지을 때도 볼 수 있었다. 건설업계가 겪는 위기도 마찬가지다. 잘 나가던 회사는 물론 LH공사도 정부가 받쳐주지 않았으면 이미 부도났다. SH공사도 위기다. 엉뚱한데 투자해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 안된다. 하지만 그대로 쫓아가는게 많다.
-얼마 전 일본 다녀왔는데, 해외사례를 어떻게 우리 현실에 적용할 것인지.
▲외국사례를 도입하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첫 번째 모든 외국 사례는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비판적이든 긍정적이든 도움이 된다. '서양에서나 통하는 얘기다'는 식으로는 영원히 새로운 것을 이뤄낼 수 없다. 나는 힘도 없고 돈도 없는 시민단체에서 일했지만 외국사례를 가져와 성공시켰다. '아름다운 가게'가 대표적이다. 안된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결국 정착시켰다. 두 번째는 그대로 가져오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한국식의 제도와 의식이 있다. 우리식으로 바꿔야한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외국 것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다만 어떤 조건, 상황에서 가능한지를 연구해야 한다.
-뉴타운 해제시 발생하는 매몰비용 처리문제가 여전히 모호하다. 구청들도 부담스러워한다.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지난해 12월 개정된 도정법을 보면 추진위원회 승인이 취소될 경우에는 시행령과 조례를 통해 비용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앞으로 어떤 항목을 어느 정도 보조할 것인지는 법의 시행령과 서울시 조례를 통해 결정된다. 현재 중앙정부와도 매몰비용 지원 항목 등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다. 뉴타운 해제지역의 기반시설 비용 지원에 대해서는 정부도 적극 검토하기로 합의했고, 4ㆍ11 총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뉴타운 수습 비용의 국가 지원을 대폭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19대 국회에서 서울시 뉴타운 대책 지원에 대해 많은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합 해산에 따른 비용 보전 문제는 도덕적 해이 등을 문제로 (제기할 수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뚝섬과 같은 대기업 부지의 경우 기업과 이견이 있는데, 해결방안은?
▲의도는 좋다. 개발이 안된 지역에 기업이 대규모 개발을 해서 지역이 살아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도시계획의 관점에서 교통, 환경 등 어떤 효과가 있는지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도움이 된다면 반드시 할 것이다. 서울시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된다면) 찾아가 빌어서라도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절대로 안된다. 나는 반기업, 개발반대주의자가 아니다.
대담=소민호 건설부동산부장, 정리=배경환 기자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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