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석화 회식때 폭탄주 금지령
박찬구 회장, 무리한 인수합병 실패 주범으로 꼽아
[아시아경제 오현길 기자]“폭탄주 마시지마라.”
경영권 분쟁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던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경영에 다시 복귀한 2010년. 박 회장은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직원들에게 새로운 명을 내렸다. 바로 폭탄주 금지령이었다. 박 회장이 금지령을 내린 속내에는 쉽게 밖으로 꺼내지 못할 사정이 담겨 있다.
박 회장은 그룹위기를 초래한 주범중 하나로 폭탄주 문화와 '형님'문화를 꼽고 있다.
이같은 폭탄주 문화가 금호아시아나 그룹을 위기에 빠트린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박 회장의 판단이다. 폭탄주 문화가 합리적인 판단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8년 외환위기 당시 사세 확장을 위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인수에 나섰다. 당시 박 회장은 인수에 반대입장을 취했다. 그룹 측이 강행하면서 인수에는 성공했지만 이후 경기 침체와 세계적인 불황으로 금호그룹은 위기에 빠진다.
재계 8위였던 금호그룹은 결국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했고 주력 계열사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게 됐다. 일부 계열사는 아직까지 워크아웃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승자의 저주'는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금호석유화학 직원들은 박 회장이 그룹을 위기에 빠뜨리게 한 대형 인수합병 추진이 폭탄주 문화에서 시작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인식하면서 폭탄주를 금지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위기를 불러온 형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됐다는 분석도 있다.
당시 인수합병의 위험성을 들어 형에 반대하던 박 회장은 결국 경영권 분리를 추진하게 된다. 현재 금호그룹은 공식적인 분리절차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분리된 상황이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폭탄주를 금지하고 있는 문화는 아직까지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지금도 특별한 자리가 아닌 이상 외부 사람들과 만나도 폭탄주를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현길 기자 ohk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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