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는 16ㆍ23일에 몰린 상장기업 주주총회에서 재벌가 2ㆍ3세들이 대거 계열사 사내이사(등기임원)로 진출한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자녀인 조현아ㆍ조원태 대한항공 전무가 후보다. 현대제철은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정 부회장은 이미 현대차ㆍ기아자동차ㆍ현대모비스 등 계열사 5곳의 등기이사다. 효성도 조석래 회장, 조현준 사장, 조현문 부사장 등 총수 부자를 사내이사로 재선임할 예정이다. 롯데, SK, 현대백화점, 농심그룹도 총수 2ㆍ3세의 계열사 사내이사 선임 안건을 처리한다.
해당 기업들은 '책임경영 차원'이라고 한다. 등기임원은 경영책임을 지는 자리로 오너 2ㆍ3세에게 경영권과 책임을 함께 부여하는 것이란 설명이다. 올 주총에 총수 2ㆍ3세 사내이사 선임이 줄을 잇는 것은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의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총선 이후 19대 국회에서 대기업의 사업영역과 상속을 제한하는 장치가 만들어지기 전에 재벌가의 지배구조 강화와 후계구도를 다지자는 포석일 수 있다.
과거 오너들이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도 이사를 맡지 않아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번 오너 일가의 사내이사 등재는 경영 실적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사회 내에 오너 일가가 너무 많으면 이사회의 독립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커진다. 주총 안건이 그대로 가결되면 대한항공의 사내이사 6명 중 4명, 효성의 사내이사 4명 중 3명이 총수 일가로 채워진다. 사외이사가 있지만 대부분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책임경영을 하려면 여러 곳의 사내이사보다 전문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정석이다. 총수 일가의 지배구조 강화 차원에서 지식과 경험이 없는 분야 계열사까지 간섭해 문제가 생기면 피해는 주주와 종업원에게 돌아간다. 재벌가 2ㆍ3세들은 이사 선임을 경영 능력을 검증ㆍ평가 받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해당 기업도 좋아지고 반기업 정서도 누그러진다. 재계 안팎의 시각대로 책임경영 강화인지, 족벌경영 강화를 위한 정지작업인지는 재벌가 신임 이사들 하기 나름이다. 능력 발휘와 함께 경영 실적이 좋으면 전자, 자리에 따라 누릴 것만 누리고 실적이 없으면 후자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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