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진수 기자] 멕시코 통신재벌 카를로스 슬림 엘루(72·사진)가 3년 연속 세계 최고 부자 자리를 지켰다.
미국 경제 격주간지 포브스가 7일(현지시간) 온라인판으로 발표한 '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 슬림은 순자산 690억달러(약 77조1420억원)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를 또 제쳤다.
슬림은 지난해 통신시장 독점 문제와 불공정 행위로 미국 연방경쟁위원회(FCC)에 벌금 10억달러를 무는 등 2010년보다 자산이 50억달러 줄었으나 여전히 세계 억만장자 1위를 고수했다.
게이츠는 610억달러로 2위,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이 440억달러로 3위, 프랑스 명품 제국 루이뷔통 모에 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410억달러로 4위를 기록했다.
아메리카 모빌, 통신업체 텔멕스, 복합기업 그루포 카르소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슬림은 '멕시코의 경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슬림이 소유한 기업들의 총 생산량은 멕시코 국내총생산(GDP)의 5%를 차지한다.
슬림의 아버지 훌리안 슬림 아다드 아글라마스는 레바논 출신 이주민으로 1910년 멕시코 혁명 이후 멕시코시티 부동산에 투자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週)마다 용돈 5페소를 주며 모든 씀씀이에 대해 꼼꼼히 기록해놓으라고 가르쳤다.
짠돌이로 성장한 슬림은 26세 때 투자 수익금에 어머니로부터 받은 돈까지 합쳐 모두 40만달러를 모았다. 그는 1960년대 중반 보틀링 공장을 하나 매입하고 건설회사, 부동산 업체도 세웠다. 1976년부터는 본격적인 기업 인수에 나섰다. 멕시코 경제가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고금리·채무불이행으로 붕괴되던 1982년에도 기업 헐값 인수는 계속됐다.
슬림이 텔멕스를 손에 넣은 것은 1990년이다. 대통령궁의 실세 친구로부터 얻은 내부 정보에 따라 지분 51%를 낙찰 받은 것이다. 당시 텔멕스의 경쟁사였던 마르카텔의 CEO 출신 카를로스 몬테마요르는 슬림이 "곤경으로 허덕이는 기업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 챙겼다"고 말했다.
텔멕스는 이후 7년 동안 시장에서 독점 기업으로 군림하며 세계 어느 업체보다 비싼 요금을 부과할 수 있었다. 슬림은 1990년대 후반 텔멕스의 무선 사업부를 아메리카 모빌이라는 이름으로 떼어냈다.
아메리카 모빌은 저소득층을 겨냥해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가 없어도 가입이 가능하도록 조처하고 단말기 보조금과 선불 카드 제공으로 가입자를 끌어들였다.
슬림은 순자산이 690억달러에 이르지만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현재 그가 살고 있는 멕시코시티의 집은 40년 전 매입한 것이다. 운전도 직접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사후 유산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슬림은 "자식들에게 재산 모두를 물려준다는 것은 얼토당토않다"고 말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설립한 재단에 지금까지 40억달러를 내놓았다. 이는 주로 자기 지분에서 비롯된 배당금이다.
이진수 기자 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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