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맥주-하이트진로 사활건 마케팅 전쟁
‘스타워즈’. 영화 제목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맥주벌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별들의 전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국내 맥주시장은 엎치락 뒤치락하는 2강 구도 속에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고. 수입맥주 시장에선 여러 나라의 브랜드들 틈에서 일본 맥주가 앞으로 툭 튀어나오며 독주 체제를 굳히려 애쓰는 모양새다. 이런 움직임이 거품에 불과한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맥주시장 역시 이래저래 혼돈의 시대다.
지난달 25일 오후 7시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 커플인 이수호(32)씨와 서인경(31·여)씨가 주말을 맞아 모처럼 저녁으로 한우를 먹다가 옥신각신하기 시작했다.
“맥주 한 잔 할까? 음, 뭐 마실까. 난 ‘하이트’(하이트진로)가 좋은데….”(이씨)
“항상 하이트만 먹네, 지겹지도 않아?”(서씨)
“네가 아직 맥주 맛을 잘 몰라서 그래. 이건 맥주 특유의 지린 맛이 없이 깨끗해서 좋은 거야.”(이씨)
“맥주 하면 역시 ‘카스’(오비맥주)지. 목 넘김이 얼마나 시원한데…. 오늘은 카스 마시자.”(서씨)
“뭐니뭐니 해도 맥주는 깔끔한 맛이 최고”라는 이씨와 “고기 먹을 땐 상쾌하고 톡 쏘는 카스”라고 주장하는 서씨. 그날 저녁 침튀기며 다투던 그들이 결국 선택한 맥주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씨와 서씨처럼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에서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항상 박빙을 다투는 사이다. 올해는 유독 국내 맥주시장의 정상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하이트진로가 부동의 1위였다면, 최근 하이트진로를 위협하며 선전하고 있는 오비맥주의 ‘창’이 주목받고 있다.
이젠 그 향배를 가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오비맥주 전체 제품의 출고량(수출 포함)은 9345만4000상자(1상자 500㎖ 20병)로 시장점유율 50.5%를 기록했다. 이에 비해 하이트진로의 출고량은 9151만9000상자로 점유율이 49.5%에 그쳤다. 오비맥주가 총 출고량 누계에서 하이트맥주를 앞지른 것은 1996년 이후 처음이다.
그러나 수출을 제외한 내수 출고량에서는 근소한 차이로 하이트진로가 오비맥주를 앞서는 상황이다. 몇년 전부터 오비맥주의 공격에 힘이 달리는 등 하이트진로의 ‘방패’가 부실한 이유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우리가 브랜드 통합 과정에서 영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이는 브랜드 관리 소홀로 이어졌다”며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메가브랜드-마이크로 브랜드 차별화 전략
두 회사는 올해부터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대표 브랜드 카스의 상승 모멘텀에 신제품 OB브랜드의 폭발력을 더해 맥주시장을 점령하겠다는 밑그림을 그려두고 있다. 카스의 경우 ‘신선한 맥주’를 앞세워 국내 주류업계 유일의 ‘메가 브랜드’ 전략을 계속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오비맥주 변형섭 이사는 “이는 하나의 브랜드 아래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군을 개발해 거느리는 방식으로 소비자 구미에 따라 시장을 철저하게 세분화하고 다양한 입맛을 맞춤제품으로 충족시키겠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메가브랜드 전략의 일환으로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카스 후레쉬’를 필두로 6.9도의 고알콜 맥주 ‘카스 레드’, 천연 레몬과즙을 함유한 상쾌한 맛의 ‘카스 레몬’, 고탄산·저도주의 젊은 감성맥주 ‘카스2X’, 저칼로리 맥주 ‘카스 라이트’ 등을 잇따라 선보였다.
여기에 제품 판매 회전 속도를 단축시킴으로써 소비자들에게 항상 갓 뽑아낸 생맥주나 다름없는 병·캔맥주를 공급하겠다는 것도 비장의 경영전략이다. 오비맥주는 2010년 초부터 출고량을 늘리기 위한 인위적인 ‘영업 드라이브’를 중단하고 재고물량을 줄이면서 맥주 유통속도를 바짝 단축시켰다. 맥주 본연의 신선도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도매상에 떠넘기는 재고 물량을 줄여 나갔다. 덕분에 요즘 맥주 제품의 유통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청량감을 내세운 카스와 달리 OB 신제품 ‘OB 골든라거’는 맛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제품간 상호보완 작용을 하면서 시장공략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게 오비맥주 측의 설명이다. 또 다른 전략분야는 프리미엄 맥주시장이다. ‘버드와이저’ ‘호가든’ ‘카프리’ ‘벡스’ ‘레페’ 등을 비롯해 2010년 말 일본 1위 프리미엄 맥주인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까지 프리미엄 포트폴리오를 한층 다양화시켜 프리미엄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이제 브랜드 통합작업이 마무리가 된 만큼, 본격적인 통합영업을 통한 시너지를 극대화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지난 1월부터 맥주 시장 절대 우세 지역인 영남지역과 소주시장 우세 지역인 수도권에서 먼저 통합영업을 시행 중이다. 지역별·주종별 상호 보완을 통해 영업력을 강화, 시장 지위의 편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오비맥주가 카스의 ‘메가브랜드’ 전략이라면 하이트진로는 하이트·맥스·드라이피니시d 등 다양한 브랜드를 내세운 ‘마이크로브랜드’ 전략에 집중한다.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브랜드 포트폴리오 강화를 목표로 하며, 최근 시장점유율이 주춤하고 있는 것은 과도기적 현상으로 보고 있다. 2006년 9월 출시된 맥스는 매년 2~3%p씩 시장점유율 상승세를 보이는 가운데 올해 두 자릿수 점유율 안착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10년 8월 출시된 드라이피니시d도 드라이 타입이라는 차별화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높여나가는 중이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맥스와 드라이피니시d는 투입된 원재료나 품질에 있어 사실 프리미엄급이지만 가격은 일반 맥주와 동일하다”면서 “이는 우수한 품질의 맥주를 더 많은 소비자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수입맥주 시장은 일본산 브랜드 전성시대
“거품이 생크림처럼 부드러워 목 넘김 역시 좋다는 게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도 다시 저으면 거품이 2~3cm 정도는 몽글몽글 살아나거든요. 청량감도 있고요.” 아사히맥주에 푹 빠졌다는 김충현(31·회사원)씨의 얘기다. 김재환(29·회사원)씨도 “삿포로 실버컵은 부드럽지만 전혀 느끼하지 않고 깔끔하다”며 “가장 좋아하는 맥주”라고 삿포로맥주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수입맥주 시장에서는 일본 맥주의 전성시대가 예상된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본맥주가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일본맥주의 수입량도 해마다 꾸준하게 증가, 수입량 1위 하이네켄을 앞질렀다. 관세청의 국가별 맥주 수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네덜란드(987만7000달러, 9075톤), 미국(969만8000달러, 6326톤), 일본(602만8000달러, 7861톤) 순이었으나 지난해는 일본맥주가 1만8252톤, 1235만3000달러치가 수입되며 네덜란드(9509톤, 1092만9000달러), 미국(5601톤, 881만6000달러)산 맥주를 앞선 것이다. 이는 전체 맥주 수입액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일본맥주가 인기를 끄는 현상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에 이자카야 등 일본 선술집이 많이 생기면서 새로운 맥주 맛을 원하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본맥주를 찾는 이가 늘었다”고 진단했다. 더불어 일본맥주가 한국인의 입맛에 더 잘 맞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미국이나 유럽맥주는 다소 쓴 반면 외국산 맥주 분위기를 내면서 부드럽고 깔끔함을 선호하는 우리 입맛에 맞췄다는 것이다.
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 사고 우려에도 맥주시장의 열기는 매우 뜨겁기만 하다. 일본 맥주 수입·판매 회사들은 지진지역 후쿠시마와는 500km 이상 멀리 떨어진 공장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안전하며 국내 수입 제품은 이미 관세청에서 철저하게 검사돼 통과되므로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현재 롯데아사히주류가 수입·판매하는 아사히 맥주를 필두로 오비맥주가 일본 프리미엄맥주 ‘산토리 더 프리미엄 몰츠’를 출시했고 하이트진로는 기린맥주의 프리미엄 브랜드인 ‘이치방시보리’를 선보였다. 매일유업은 ‘삿포로’를 내놨다. 가장 잘 나가는 건 아사히맥주다. 2010년 대비 20% 가량 신장하며 지난해 국내 판매 120만 상자를 돌파했다. 지난 2000년부터 수입·판매된 아사히맥주는 당시에는 인지도가 낮았으나 공격적인 영업과 젊은 층 대상의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진행했다.
호텔, 일식 주점, 클럽 등으로 판매처가 점점 늘면서 2005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48%에 달하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 해 4월부터는 배우 차승원을 모델로 한 ‘수퍼 드라이’ 광고를 통해 남성미를 강조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조밀조밀 거품과 효모가 특징인 우수한 품질을 내세워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도 주효했다. 그 뒤를 잇는 건 삿포로 프리미엄, 삿포로 생맥주 블랙라벨, 삿포로 실버컵 등 총 3종을 앞세워 국내 시장을 공략중인 삿포로다. 현재 아사히에 이어 국내 일본맥주 판매 2위를 기록 중이다.
현재 국내 시장에서 수입·판매되는 수입맥주의 시장 규모는 2011년 기준으로 약 4500만 리터로 2010년 대비 11% 가량 성장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맥주회사들은 일본 맥주의 상승세에 힘입어 관련 마케팅과 영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어서 수입맥주 시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예고되고 있다.
지역맥주 가세·롯데그룹 시장 진출도 변수
제주도가 최고의 천연자원인 '물'을 이용해 맥주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어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국내 맥주시장 규모는 출고량을 기준으로 3조8264억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제주지역 맥주 시장은 전국의 1.6%인 600억원 규모다. 현재 공모를 통해 제휴 기업을 물색 중이다. 기업이 확정돼 내년 1~2월 중 출자법인 설립 등의 사업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2013년 7월 제주맥주가 출시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 2개 대기업의 과점구조로 된 맥주 시장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업계 관계자는 “제주맥주는 현재 메이저 회사들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정도로 규모가 작다. 뚜껑은 열어봐야 알겠지만 ‘삼다수’가 크게 히트했던 것처럼 사업자가 누가 되느냐, 대규모 사업자가 되느냐에 따라 규모를 더 키울 수도 있으므로 향후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롯데그룹이 충북 충주에 맥주공장을 지어 맥주시장 진출에 본격 나서기로 한 것도 변수다. 이르면 오는 2017년 이 공장에서 연간 50만㎘의 맥주가 생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본력과 유통망을 갖춘 유통공룡이 뛰어드는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지만 공장 설립과 제품 론칭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업계는 아직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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