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버스 온통 전세내고 앉은/번데기가 다 된 할머니 둘/뭐라뭐라 아까부터 핏대 한창 드높다
- 내사 안 팔기다
- 와, 금 좋을 때 팔지
- 아무리 캐싸봐라 더 오리면 팔끼다
- 와카노, 지금 파는 것도 괘안을낀데
- 아이다, 내 우예 모은 새끼들인데
처음엔 말린 고추 얘긴 줄 알았다/펀드라도 되나 하다가/땅뙈기 정도는 되나보다 생각했다/가만히 더 들어보니/골목골목 뒤져 모은 고물 이바구다/털털털 고물 버스에 실려 가는/곧 부화할 할머니 둘,/고물로 접어드는 희끗한 사내 하나
고증식 '고물, 고물들'
■ 이 시를 읽으려면, 고물 버스 위에 올라앉는 게 상책이다. 털털털 버스에 실려 두 할머니 얘기를 엿듣는 게 가장 생생한 감상법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풍경. 처음엔 무슨 얘기인지도 종잡기 어렵다. 그들의 보물은 고물이다. 거동하기 힘겨운 연세에 어렵사리 모은 보물같은 고물이다. 옆에선 가격 좋을 때 팔라고 부추긴다. 좋아봤자 큰 돈이 되겠는가. 하지만 이들은 진지하다. 시인은 이쯤에서 묻는다. 우리가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건 진짜 보물인가. 고물은 진짜 고물인가. 저 낡아버린 인생과 낡은 버스. 그 고물들 속에 뜻밖에 보물이 있지 않은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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