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디폴트 선언해도 파장은 미비할 듯
[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그리스 정치권이 구제금융 지원 전제 조건인 긴축안을 놓고 막바지 협상을 벌였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문제는 연금의 15% 삭감을 놓고 루카스 파파데모스 총리와 과도정부 구성을 지지한 사회당, 신민당, 라오스 등 세 정당 당수들간의 이견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3주째 계속되고 있는 그리스 2차 구제금융 협상이 여전히 미궁에 빠진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그리스가 2차 구제금융을 받지 못해 디폴트를 선언하거나 유로존 이탈까지 염두에 둬야 할 긴박한 상황이다.
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파파데모스 총리는 “정당 지도자들이 2차 구제금융 패키지를 확보하기 위한 상당수 조건들에 합의했지만 연금관련 이슈에서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리스 집권여당인 사회당의 파노스 베그리티스 대변인은 “정당 지도자들이 오늘 밤 다시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 등 이른바 ‘트로이카는 그리스에 1300억 유로를 추가 지원하는 대신 최저 임금 22% 삭감과 연금 축소, 공무원 감축 등의 긴축안을 모두 수용하라고 독촉해왔다.
이번 협상에서 민간부문의 최저 임금 22% 삭감과 공공부문인력 연내 1만5000명 감원, 국내 총생산 대비 1.5% 규모의 올해 추가재정 긴축 조치 등에 대해선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리스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고 있는 퇴직 이후 받게 될 연금 삭감에 대해선 트로이카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오는 4월 조기총선이 예정된 상황에서 정당지도자들이 자칫 표심을 잃을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파파데모스 총리는 두 차례 연기됐던 이번 회동에서 합의를 이끌어낸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앞서 지난 5일 열린 협상에선 이들 세 정당 대표들이 긴축 정책을 거부했다.
전문가들은 그리스 내부에서 긴축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그리스 결국 디폴트를 선언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 그리스는 오는 3월20일 145억유로 규모의 국채의 만기가 도래한다.
2차 구제금융을 통해 1300억유로의 추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한다면 원금은 물론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서 ‘무질서한’디폴트 선언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스는 유럽의 민간채권단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 2000억유로 중 1000억유로를 덜어내는 손실분담(PSI)에 대해서는 동의를 얻어낸 상태다. 이를 통해 현재 국내총생산 대비 160%인 그리스 정부부채 비율을 120%로 끌어내린다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민간채권단 역시 이날 파리에서 국채 교환 협상 결과를 놓고 논의할 계획으로 알려졌지만 긴축안 합의에 실패한 이상 별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리스 정부와 협상을 해온 민간채권단 대표인 국제금융협회(IIF)는 그동안 국채 교환이 신속히 이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술적 사항들을 논의해왔다. 이들은 그리스 국채를 평균 표면금리가 3.6%인 30년 만기 장기채권으로 교환하는 합의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절차가 진행되면 민간채권단 손실률은 70%를 넘게 된다.
국체교환합의는 그리스 과도정부 구성을 지지한 정당지도자들이 2차 구제금융 지원 조건에 합의하고 그리스 정부와 트로이카 간 구제금융 지원 협상이 완료돼야 확정된다.
전문가들은 그리스가 최악의 경우 디폴트를 선언하더라도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오히려 미국경제 회복세, 아시아 증시 활황 등이 이어지는 현시점에서 그리스 문제를 디폴트로 해결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로버트 호록스 매튜스 아시아펀드 최고투자책임자(CIO) 지난 7일 CN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0.4%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지금 뜨는 뉴스
한편,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유로그룹)는 그리스 구제금융 관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브뤼셀에서 긴급회의를 열기로 했다. 장-클로드 융커 유로그룹 의장은 “9일 오후 6시(한국시각 10일 오전 2시)에 유로그룹 회의를 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융커 회장은 최근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그리스가 긴축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유로존의 멤버로 남아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어쩌면 3월 중 그리스가 파산을 신청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규성 기자 bobo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