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시각장애인 앵커 이창훈씨의 요즘은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처음엔 보는 사람들이 더 긴장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전하는 뉴스보다는 시각장애인인 저에게 관심이 집중됐다는 말이죠."
국내 방송 사상 첫 시각장애인 앵커라는 수식어를 달고 브라운관에 등장한 이창훈(27) 씨. 그가 매일 낮 12시30분에 방송되는 KBS 1TV '뉴스12'의 생활뉴스를 진행한지도 벌써 3개월이 흘렀다.
지난 1일 KBS 신관 홀에서 만난 이 앵커는 방송용 의상도, 메이크업도 한결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멋있어진 외모를 칭찬하자 "매일 메이크업을 하다 보니 교회 누나들이 클렌징오일과 마스크팩 같은 걸 선물해줬어요. 덕분에 잘 관리하고 있고요"라며 쑥스러워하지도 않고 답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7개월 만에 앓은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양쪽 시력을 잃었다. 평범한 집안에서 누나 셋을 둔 막내아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남달리 언변에 재능을 보였다고는 하지만 꼭 앵커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서울신학대와 숭실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준비 중이었다. 국가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모니터링단으로 활동하던 중 우연히 KBS가 최초의 장애인 앵커를 선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지원했는데, 단번에 합격했다.
"어떤 분들은 제가 눈물겨운 노력을 해서 앵커가 되지 않았을까 하며 안쓰럽게 생각하시는 것도 같아요. 한편으로는 '집안이 부유하다더라', '타워팰리스에 산다더라' 하는 뜬금없는 오해도 받았고요. 항상 노력해 왔고 또 타이밍도 맞았던 거죠."
방송이 익숙해졌냐는 물음에 "가끔은 버벅거리며 틀리기도 한다"며 "그래도 이젠 실수해도 불안해하지 않고 고쳐 말하며 넘기는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물론 방송 중의 긴장감이나 스릴은 여전하고 매일매일이 아직까지는 도전이죠"라고 대답했다.
그는 매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자취집에서 여의도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방송국에 들어서는 시간은 오전 9시30분쯤. 주요 뉴스를 스크랩하고 그날 리포트 할 아이템들을 살펴보는 일로 업무를 시작한다. 그가 맡고 있는 생활 뉴스 가운데 리포트 할 기사들이 선택되면 앵커 멘트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다. 음성지원 키보드로 입력하고 데스크의 수정을 거쳐 점자단말기로 출력까지 마치는 일은 대개 방송 시작 30분 전까지 이뤄진다. 메이크업은 여느 앵커들처럼 분장실에서 알아서 해준다.
KBS 내에서 그의 공식 직함은 '보도본부 프리랜서 뉴스앵커'. 소위 '언론고시'를 거쳐 입사하는 기자나 아나운서들과는 다른 계약직 신분이다. 하지만 그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다. 회사는 이 씨를 위해 2000만원 상당의 점자단말기와 점자프린터기를 들여놨고, 사무실 책상에서 스튜디오, 화장실로 이어지는 주요 동선에는 점자유도블록도 깔았다. 이씨는 "나를 도와주는 상근 보조 스태프(FD) 월급까지 생각하면 회사에서 투자하는 비용이 상당하다"며 "공영방송으로서의 책무를 보여준 좋은 본보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방송을 하지 못했을 때를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았다. "방송 준비를 다 마친 상황이었는데 속보로 보도국 전체가 비상이었어요. 예정됐던 제 방송은 중단됐지만 시시각각 긴박하게 움직이는 방송국의 상황을 실감한 순간이었죠".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더해진다. "잘 해서 이일을 최대한 오래 하고 싶어요. 최초라는 타이틀로 많은 관심을 받은 만큼 제가 잘 해내는가도 중요할테니까요. 다른 장애우들의 장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책임감도 느낍니다. 그래서 잘 해내고 싶어요"
장인서 기자 en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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