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가 직접 뽑은 그의 대표작 7선
[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영화는 죽어도 하정우는 산다. 영화의 외적 완성도나 흥행 여부와는 별개의 이야기로, 서로 닮은 듯 서로 다른 듯 극 중 하정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유독 '반짝반짝' 빛난다. 밝은 미래를 바라고 한국에 온 밑바닥 조선족 청년 '김구남'('황해')에서 유들유들한 여피 변호사 '강성희'('의뢰인'), 어머니의 온기를 그리는 입양아 '차헌태'('국가대표')까지 하정우는 언제나 '팔딱팔딱' 살아 숨 쉬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물들을 연기했다.
2일 개봉된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이하 범죄와의 전쟁)에서 하정우는 한번 더 넓고 깊게 본다. '범죄와의 전쟁'은 1980년대 초 부산 세관공무원이던 최익현(최민식 분)이 깡패 보스 최형배(하정우 분)와 얽히며 '부산 폭력배의 대부'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로, 극 중 하정우는 절대 평정심을 잃지 않는 '냉혈한' 최형배 역으로 등장한다. 조인성, 신민아 주연의 영화 '마들렌'에 조연으로 출연한 것이 2002년의 일이니, 올해로 벌써 프로 연기자 11년 차다. 의심할 여지 없이 충무로 30대 대표 남자 배우가 된 하정우가 직접 선정한 그의 대표작 일곱 편을 소개한다.
용서받지 못한자(2005)
감독_윤종빈 | 주연_하정우, 서장원
"군대 안에서의 태정이라는 인물이 대학교에서 연극할 때의 김성훈(하정우의 본명)이라면, 사회에서의 태정은 사회로 나온 하정우다. 찌들고 안 찌들고의 문제가 아닌, 유연성 영역의 이야기다. 지금의 하정우라는 배우를 있게 한 고마운 작품이다."
윤종빈 감독의 학부 졸업작품이자 첫 장편 영화. 말년 병장 태정(하정우 분)이 군대에서 중학교 동창 승영(서장원 분)을 내무반 신참으로 맞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군대를 '제대로' 다룬 최초의 영화이자 방향 감각을 잃은 20대 한국 남자들의 성장담이다. 2006년 칸국제영화제 공식 부문인 '주목할만한 시선' 진출작으로, 태정 역의 하정우는 디렉터스컷,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단번에 충무로 샛별로 떠올랐다.
시간(2006)
감독_김기덕 | 주연_성현아, 하정우
"김기덕 감독은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 중 한 명이다. 29일 개봉되는 로맨틱 코미디 '러브 픽션'의 어두운 버전(Dark Version) 정도 될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연애 이야기를 진지하고 색다른 방식으로 펼쳤다."
김기덕 감독의 통산 열세 번째 장편 영화. 여자가 자신에게 싫증을 내는 남자 친구를 위해 과감한 성형 수술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재로, 두 연인의 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넘어 시간의 철학 이야기다. 극 중 성현아가 분한 새희의 이기적인 남자친구 지우 역으로 등장하는 하정우는 이 영화로 27회 오포르토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추격자(2008)
감독_나홍진 | 주연_김윤석, 하정우
"어쩌면 '범죄와의 전쟁'의 최형재를 있게한 캐릭터가 '추격자'의 지영민이다. 내 영화적인 취향에 가장 가까우며, 뭐든지 지루한 것은 절대 못 참는 내 취향과도 잘 맞는다. 하정우를 만들어준 동시에, 내 이름 앞에 '추격자의'라는 수식어를 달게 했다."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 '한'으로 주목받은 나홍진 감독의 장편 데뷔작. 미국드라마 '24시'를 떠오를올정도로 하룻밤 동안 벌어지는 전직 경찰 중호(김윤석 분)과 연쇄 살인마 영민(하정우 분)의 줄기찬 추격전을 그려낸다. 한국 리얼리즘 액션 스릴러의 결정판 격인 작품으로 세련된 연출과 치밀한 구성, 배우들의 호연 등 3박자를 고루 갖췄다.
멋진 하루(2008)
감독_이윤기 | 주연_전도연, 하정우
"배우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많이 배웠다. 쓸데 없는 자존심 세우며 어렵게 살지 말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면서 사는 것이 더 좋은 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직업도 애인도 없이 서른을 넘긴 희수(전도연 분)가 350만원의 빚을 받아내기 위해 헤어진 남자친구 병운(하정우 분)를 찾아갔다가 하루를 그와 함께 보낸다. 내내 흔들리는 핸드 헬드(Hand-Held, 카메라를 손에 들고 촬영하는 기법) 화면과 경쾌한 리듬감이 돋보이는 소품이다. '여자, 정혜' '아주 특별한 손님'의 이윤기 감독이 연출을 맡았는데, 전도연과 하정우의 화학 반응이 눈부시다.
국가대표(2009)
감독_김용화 | 주연_하정우, 성동일
"수많은 어린이 팬들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됐다.(웃음) 내겐 개인적으로는 큰 위로가 됐다. 부모님의 이혼 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괴롭던 시절, 해외입양아 '밥'이라는 인물을 빌려서 원 없이 울 수 있었다. 무거운 짐을 시원하게 내려놓은 성찰의 느낌이 강한 영화다."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 김용화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영화로, 개봉 당시 전국 85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지금까지 하정우 최고 흥행작으로 기록된다. 갖가지 사연과 배경을 가진 다섯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이 꿈에 접근해 가는 내러티브로, 색다른 소재에 '신파' 감동 코드를 적절히 버무렸다. 극 말미 스키 점프 장면은 지금 봐도 박진감 면에서 손색이 전혀 없다.
황해(2011)
감독_나홍진 | 주연_김윤석, 하정우
"'추격자'에서 조금 더 나아간 작품이다. 한번 나홍진 감독 영화의 맛을 본 터라 조금 더 맛을 보고 싶었던 욕심에서 출발했다. 11개월 촬영 기간 내내 육체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극한(極限)' 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했던 것 같다."
흥행과 평단을 고루 만족시킨 '추격자' 이후 나홍진 감독이 2년 만에 내놓은 작품으로, 할리우드 메인 스튜디오 20세기폭스가 제작에 참여해 화제가 됐다. 극 중 하정우는 연변에서 택시를 몰다 연락이 끊긴 아내를 찾아 한국에 온 구남으로 분해 '면가' 역의 김윤석과 함께 '추격자'에 이어 폭발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자동차 추격 장면이나 살육 장면 등 전작에 비해 속도감과 강도는 더 강력해진 반면, 여러 갈래의 이야기는 다소 허술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감독_윤종빈 | 주연_최민식, 하정우
"윤종빈이 창조해내는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고 흥미롭다. 철저히 영화적 판타지 느낌으로 건달과 남자들의 이야기를 건조하게 풀어가는 것이 좋았다. 전작 '의뢰인'과는 달리 어떠한 손동작도 없는, '쉼표' 느낌의 절제된 연기로 일관했다. 정말 좋은 형님이자 선배인 최민식과의 작업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용서받지 못한자' '비스트 보이즈'를 잇는 윤종빈 감독과 하정우의 통산 3번째 합작 영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혹은 마틴 스콜세지의 '좋은 친구들'을 연상시키는 액션 누아르 장르다. 생존을 위해 암투와 배신을 반복하는 한 남자 최익현(최민식 분)을 통해 1980년대를 조명하고 풍자한다. 최익현 역의 최민식을 비롯해 하정우, 조진웅, 마동석, 곽도원 등 남자 배우들의 앙상블이 근사하며, 시종일관 질러대는 '발산' 연기의 최민식과 하정우의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정적(靜的)'인 연기 대비가 돋보인다.
태상준 기자 birdcage@·사진_이준구(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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