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이스트만 코닥(이하 코닥)'이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법원에 낸 신청 서류엔 자산 51억 달러, 부채 68억 달러가 기록됐다. 132년 동안 세계 ‘필름’의 역사를 주도한 코닥이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도구의 맹공에 무너진 것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코닥의 순간(Kodak moment)’이라고 합니다”라는 전성기 시절 코닥의 광고 카피처럼 코닥은 세계인에게 향수와 추억을 선물했다. 미디어와 예술의 발전에 기여한 바도 크다. 미국의 유타 주엔 코닥의 컬러 필름 브랜드인 ‘코다크롬’을 딴 ‘코다크롬 주립공원’도 있다. 그 곳의 분지를 세상에 널리 알린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사진 촬영에 코다크롬을 썼기 때문이다. 이제 필름 특유의 톤을 가진 필름 영화는 디지털로 재현된 ‘필름룩 영화’가 대신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코닥의 파산 원인을 “변화와 결단력 부족”이라고 분석한다. 코닥은 가장 먼저 필름 산업의 종말을 예측하고 1975년 디지털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하지만 기존 사업 모델을 포기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이 후지필름이 1988년 디지털 카메라를 출시하자, 시장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했다. 디지털카메라 시대를 늦추기 위해 기존 카메라에 대한 마케팅 비용을 대대적으로 늘리기도 했다가,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본격화하는 노력을 하기도 했다. 그 사이 뒤늦게 뛰어든 소니, 니콘, 캐논 등 경쟁사들에게 시장을 맥없이 내주고 말았다.
반면 필름 시장의 양대 산맥 중 하나였던 ‘후지필름’의 경우는 확연히 달랐다. 필름과 광학기술을 활용한 사업 다각화에 매진해 의료기기, 복사기, 제약, 화장품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2011년 전체 영업이익에서 필름이 차지하는 비율이 1%도 안 될 정도로 변신에 성공해 여전히 비상하고 있다.
필자도 지속적으로 창의와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성과 가정을 가장 잘 알면서도 세계적인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이 가장 중요한 화두이다. ㈜한경희생활과학은 스팀청소기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 후, 스팀가전분야 80%라는 경이적인 시장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이에 세계 최대의 가전 시장인 미국에 주목했고, 주거형태가 카페트에서 원목마루로 바뀌고 있는 것에서 가능성을 확신해 스팀청소기의 타깃을 해외로 돌리며 한국에 있는 시간보다 해외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또한 국내 시장에서는 건강하고 깨끗한 주거 환경을 위한 다양한 건강생활가전들을 새롭게 선보였다. 물만으로 살균수를 만들어주는 ‘클리즈’는 2009년 출시 첫 해에 20만대 판매를 돌파했고, 작년에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1초만에 진드기 살충이 가능한 침구청소기 ‘침구킬러’를 출시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여성을 위한 제품만을 10년 이상 선보인 노하우를 살려 기름 없이 튀기는 '에어프라이어’ 등 신개념 주방 용품을 시작으로 주방 라인 사업을 본격화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진동파운데이션’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화장품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
사실 코닥의 역사를 살펴보면, 혁신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온라인판매, 온라인사진서비스 등 본연의 사업을 키우는 다각화뿐만 아니라 제약·의료, 디스플레이 소재, 상업용 프린터 등에도 진출했었다. 하지만 변화를 위한 노력과 기존 자산 사이의 갈등이 컸던 것이 균형 있는 발전을 막았을 것이다.
팽이가 쓰러지지 않고 힘차게 계속 돌기 위해서는 원심력과 구심력이 팽팽하게 작용해야 한다. 구심력이 없으면 넘어지고 원심력이 없다면 돌 수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은 “팽이를 쓰러뜨리려는 외부 환경 변화는 구심력(교세라 철학 계승)으로 제어하면서 팽이를 계속 돌게끔 원심력(다각화와 혁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변화가 빠른 21세기엔 많은 기업들이 코닥과 후지필름의 기로에 놓인다. 새로운 것에 대한 확신과 현재 가진 것에 대한 포기, 이 두 가지를 한번에 해야 하기에 더 큰 결단력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모든 기업들이 힘차게 도는 팽이처럼 구심력과 원심력의 균형을 이루며 성장하기를 바래본다.
한경희 한경희 생활과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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