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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남자 대통령 되는 것을 막아 줄 수 없나요?"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분 37초

[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헌법에 대통령 3선 연임 금지 조항를 포함시켰던 사람들은 권력이 어느 한 개인의 소유물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이 조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들은 2번 대통령직을 연임하고 다른 이에게 권력을 넘겨줬다가 다시 대통령직에 복귀하는 상황을 생각했을까? 물론 이들은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은 했겠지만, 그럼에도 '설마 그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 설마가 현실이 됐다.

"누가 이 남자 대통령 되는 것을 막아 줄 수 없나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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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21세기의 차르(절대군주)'로 불리우는 블라드미르 푸틴 총리가 대선 출마의 이유를 밝혔다. 그는 자신의 대선 출마 이유가 "국가 발전과 강대국 건설 임무의 완수"라고 밝혔다.


푸틴 총리는 1999년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이래 2000년부터 2008년까지 2회 연속 대통령이 되어 러시아를 통치했으며, 러시아 헌법이 3선 출마를 금하는 규정에 발목이 잡히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를 전면에 내세워 대통령에 앉히고 자신은 실세 총리가 되어 대통령 이상의 권력을 누려왔다.

3번 연속 출마금지의 족쇄가 풀린 푸틴 총리는 지난달 20일 러시아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통합러시아당의 대선 후보로 정식 등록했다.


푸틴이 대통령 선거에 다시 출마할 것이라는 예상은 그의 행보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스스로 러시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러시아 국민에게 입증하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했다.


"누가 이 남자 대통령 되는 것을 막아 줄 수 없나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웃통을 벗고는 말을 타고 다니지를 않나, 할리 데이브슨을 타고 다니는 건 예사다. 그 정도로는 뉴스소재가 안 되겠다 싶은지 이제는 포뮬러 원(F1)을 타고 서킷을 누비기까지 했다.


2010년 푸틴의 58회 생일에는 모스크바 국립대 여대생들이 생일을 기념해준다며 누드 캘린더까지 제작했다. 란제리 차림의 그녀들이 등장한 캘린더에는 "사랑해요 푸틴. 그리고 생일 축하해요"라고 쓰여 있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젊은 여성들로만 구성된 '푸틴의 군대'라는 조직이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이들은 푸틴을 러시아의 지도자이자 멋진 남자라고 치켜세우며, 대선 출마를 촉구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 그의 당선을 위해 옷을 벗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첩보 형식의 온라인 게임 광고가 모스크바 시내를 뒤덮은 적이 있는데, 이 포스터의 메인 모델이 바로 푸틴이다. 푸틴의 KGB 경력이 국민들에게 다시금 환기되면서 '강하고 멋진 남자' 이미지 구축에 한몫 기여했을 것이다.


그는 이런 퍼포먼스와 개인적 매력만으로 대선가도를 준비한 것은 아니다. 그는 광대가 아니라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2009년 6월 러시아 국민들은 재벌에 펜을 집어 던지며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지불하라고 고함치는 푸틴 총리를 TV 생방송으로 보게 됐다.


무대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 피칼료보의 시멘트·알루미늄 공장, 등장 인물은 푸틴 총리와 러시아 최고 부호 중에 하나인 올레그 데리파스카 였다. 당시는 금융위기 직후였던 탓에 공장은 몇 달째 조업을 중단하고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체불한 상황이었다. 푸틴 총리는 펜과 합의서를 데리파스카에게 던지며 공장 재가동하겠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빨리 서명하라"고 호통을 친다. 이에 데르파스카는 고개를 푹 숙인채 푸틴 앞에서 공장을 재개하겠다는 문서에 서명을 했다. 이 모든 전과정은 TV 생중계됐다.


이 방송이 나간 직후 푸틴의 인기가 급상승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닐까?


물론 푸틴 총리의 인기의 배경에는 그의 쇼맨십과 포장된 이미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강대국 이었던 소련 붕괴 이후 경제적 고통 속에서 신음하던 러시아 국민들에게 그의 재임기간은 자신감 회복의 시기였다. 그의 재임 시절 경제는 안정국면을 넘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러시아의 부활을 알리는 듯 했다.


그가 16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유력지 이즈베스티야에 기고문을 통해 밝혔듯 "2000년 러시아의 국민소득은 2000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만2000달러로 성장"했고 "1998년만 해도 러시아의 중산층의 비율이 불과 5~10%에 그쳤는데 이제 25~35%에 수준"이 됐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직했던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연평균 경제 성장률은 7%에 달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경제적 성장에 대해 다른 목소리도 있다. 일단 러시아의 경제적 기적은 러시아 산업의 기적이 아닌 대폭 올랐던 '석유'와 '가스'의 기적이었다는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 교수에 따르면 푸틴이 권력을 잡고 있는 동안 "러시아 수출에서의 기계 등 기술집약적 자본재 비율은 2003~2008년 사이에 9%에서 4%로 내렸"을 뿐만 아니라 "기계생산량은 소련 말기의 40% 정도에 불과하고, 그 기술적 수준은 갈수록 떨어졌다"는 것이다. 푸틴의 재임기간 동안 산업계 경쟁력이 퇴보했다는 것이다.


푸틴의 재임기간에 대한 서방의 주된 비판은 주로 러시아의 부패와 관련돼있다. 러시아의 부패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위크리크스에 공개된 미국의 외교전문에는 러시아를 두고 '푸틴 총리에게 권력이 집중된, 부패하고 독재적인 도둑정치체제'로 평가됐다.


스페인에서 러시아 조직범죄를 수사해왔던 호세 곤잘레스 스페인 검사는 미국 외교 당국자에게 "러시아 정부의 활동과 조직범죄단체의 활동을 구별할 수 없다"며 "러시아는 사실상 마피아국가"라고 밝혔다. 외교 전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오가는 뇌물만 연간 3000억달러에 이르며 푸틴 총리 역시 엄청난 재산을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푸틴이 대선에 출마하면서 밝힌 재산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는 아파트 2채와 수십년 된 자동차, 그리고 통장에 약 2억원 정도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다. 그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그가 해외 어딘가에 막대한 돈을 숨겨뒀을 것으로 보고 있다.


푸틴이 이번 대선에 나오면서 밝힌 출마의 이유는 "보다 근대적인 정치 시스템과 시민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경제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누가 이 남자 대통령 되는 것을 막아 줄 수 없나요?"

하지만 그는 지난해 12월 5일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거 부정이 있었다는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시위대가 모스크바를 뒤덮었을 때 시위대들의 가슴에 달린 하얀 리본을 두고 '콘돔같다'고 비아냥 거렸을 뿐이다. 이 사례에서 보듯 그는 러시아의 민주화나 정치 발전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출마의 이유를 밝힌 이번 기고문에서 그는 중산층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러시아의 미래는 중산층에게 달려 있고, 이들을 위한 첨단산업을 육성해 25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 전문가들은 "이번 기고문을 통해 러시아 중산층이 푸틴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은 푸틴도 알고는 있는 거 같다"고 평했지만 "푸틴이 이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러시아는 헌법개정을 거쳐 대통령의 임기를 6년으로 늘린 상태라 푸틴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고 또 그 다음 대통령까지 하게 되면 푸틴의 통치는 2024년까지 된다.


러시아 대통령 선거는 3월 4일 실시되는데 다수표를 확보한 후보가 없는 경우 21일 내에 결선 투표를 거쳐 대통령을 확정한다. 전문가들은 이변이 없는 한 그의 당선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나주석 기자 gongg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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