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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업체를 탁구공으로 뽑아?"...법에 우는 입주민·관리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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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관리업체를 탁구공으로 뽑아?"...법에 우는 입주민·관리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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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미주 기자]"이거 다 운으로 뽑는 거야."


지난 12일 저녁 8시 송파구 잠실의 'ㄹ'아파트 단지. 영하10도의 날씨에도 입주민들과 주택관리업자들이 모여 있었다. 2년간 아파트를 관리할 회사를 선정하기 위해서다. 선정방식은 최저가 낙찰 입찰이다. 총 10개사 응찰했다. 그런데 화이트보드에 적힌 응찰가가 6983만9880원으로 모두 같았다.

한 주민이 벌떡 일어나 "담합한 거 아니에요? 어떻게 다 같아요?"라 항의했다. 그러자 입주민들과 업체 대표들이 일제히 "아닙니다"라 외쳤다. 모두가 적은 가격은 입주민이 제시한 최저가 자체였던 것이다.


최저가 낙찰이 실패하자 '탁구공 추첨'이 이어졌다. 여기서 뽑힌 관리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하겠다는 것이다.

입주민 대표는 미리 준비해둔 박스와 탁구공, 목장갑, 안대를 꺼냈다. 처음에는 마술쇼인냥 박스를 뒤집었다. "아무것도 없죠?"라며 참관인들을 안심시켰다. 이어 그 자리에서 탁구공에 번호를 썼다. 탁구공을 박스 안에 집어넣으며 업체 관계자들을 불렀다.


한 사람이 "먼저 추첨한 사람에게 유리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추첨 과정을 준비한 입주민은 "우리가 조작하지 못하도록 고안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갑(주민) 마음이다. 을(관리업체)이 하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주민이 정하는 방법대로 관리업체를 선정할테니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고 압박한 것이다.


이에 입찰에 참여한 업체 대표들은 일제히 목장갑을 끼고 안대로 눈을 가렸다. '나는가수다' 프로그램에서 순번을 뽑듯 탁구공을 뽑았다. "9번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은 한 업체대표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누군가는 "그냥 대충 뽑아요, 어차피 운에 맡기는 건데"라고 말했다. 아파트관리업체 선정 과정이 로또 같았다. 어떤 이는 "웃기는 입찰"이라 표현했다.


8번째로 나선 업체 대표가 '1번' 탁구공을 뽑았다. 여기저기서 부러움의 탄식이 쏟아졌다. 탁구공으로 1,2,3위가 선정됐다. 서류검토만 통과하면 입찰된다. 나머지 업체는 입찰봉투를 되돌려 받았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한 입주민은 "저렇게 뽑으니 관리를 잘 하는 업체를 마음대로 못 고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아파트 관리 서비스의 질이 낮다는 데 불만이었다. 다른 입주민은 "경비아저씨가 있지만 나이가 너무 많은 탓에 아파트를 둘러보기는커녕 초소에만 앉아 있다"고도 털어놨다. 이어 "현재 관리업체도 추첨으로 뽑았다"며 "그때 잘못 뽑아서 서비스가 엉망이라 1년 만에 다시 입찰하게 됐지만 결과는 또 마찬가지가 될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김태준 입주민 대표회장은 "정부차원의 규정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토로했다. 아파트가 한국의 주거문화를 대표하는 상품이 됐고, 도시민의 대부분이 아파트에 살고있지만 관리업체 선정방식은 원시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 이유다.


◇개정된 주택법 때문에..=사실 이런 로또 뽑기식 관리업체 선정과정은 법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2010년 7월6일 제정된 ‘주택관리업자 및 사업자 선정지침’에 맞게 진행해서다.


이 지침은 그간 아파트 관리업체 선정 때 비리가 많았다는 이유로 만들어졌다. 이를통해 '최저 위탁관리수수료'를 제시한 주택관리업자를 선택하도록 했다. 업체들이 입찰에서 써낸 수수료가 같으면 추첨으로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침이 시행된 초기부터 위탁관리업체들이 수수료를 ㎡당 5원, ㎡당 4원같은 최저가를 제시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당 0원이나 1원을 제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이로인해 검증되지 않은 업체가 입찰되기도 했다. 이제는 일제히 최저가를 적어서 입찰한다. 응찰가가 모두 같게 된 배경이다.


결국 당락은 탁구공, 제비뽑기와 같은 추첨에 좌우되게 됐다. 관리사의 기술력이나 자본금은 무의미해진 셈이다.


◇아파트관리회사도 힘들어=관리업계는 고역이다. 관리 노하우나 자본금을 기준으로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개 단지도 수주하지 못하는 곳이 늘고 있다. 저가 관리에만 신경써야 하니 수익은 전혀 챙길 수 없다. 한 업체 관계자는 "바뀐 선정지침 때문에 대형 주택관리사 몇 곳이 도산했다"고 전했다.


최진희 우리관리 브랜드개발팀 팀장은 "지난해 월 위탁수수료 수익 기준으로 연초대비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며 "부사장 2명도 구조조정했다"고 말했다.


최 팀장은 "탁구공 추첨 전에 주민들 대상으로 설명회를 가졌다"며 "어차피 추첨으로 할 거면 설명회는 왜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탁구공 선정에 따른 갖가지 부작용도 제기되고 있다. 기술력이 있어도 수주하지 못해 도산하는 회사가 생기는 반면 관리 노하우가 없는 회사가 아파트관리를 맡을 수 있다.


또 받지 못한 적정 수수료를 받기 위한 비리도 발생하고 있다. 아파트의 공사 용역 업자를 선정할 때 관리 인력에게 줄 급여를 얹기도 한다. 결국 공사비가 늘어 입주민이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낮은 임금에 인력을 쓰면서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거라는 문제도 거론된다. 한 입주민은 "관리비를 더 내서라도 제대로 된 업체를 통해 질 높은 서비스를 받고 싶다"고 털어놨다.


사실 아파트 관리비에서 위탁관리수수료는 1% 내외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난방, 전기 등의 요금과 기타 공사대금이다. 최저수수료로 입찰한다고 해서 아파트관리비가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상반기에 새 평가기준 도입될 듯= 논란 많은 지침을 도입한 국토해양부도 이 같은 실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최저가 낙찰제와 함께 새로운 평가기준을 마련해 보완하도록 하겠다는 개선안을 만드는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저가낙찰제가 무조건 나쁘지만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관리비가 내려가는 부분도 있고 덕분에 비리도 줄었다는 지적도 내놨다. 다만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다른 길도 튼다는 계획이다. 최저가 낙찰제를 원칙으로 하되 주민 과반수이상이 찬성하면 심사제를 통해 선정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다.


류종우 국토해양부 주택관리 사무관은 "주택관리업체 선정과 관련해 적잖은 민원이 있다"며 "지금은 가격으로만 업체를 선정하도록 돼 있는데 관리 능력도 볼 수 있도록 평가기준을 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아파트 단지에서 기업의 신뢰도나 기업의 관리업무수행능력, 입찰 가격 등의 제반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선정해 배점을 부여하는 방안으로 검토하고 있다"면서 "늦어도 상반기 전에는 확정, 시행할 것"이라 덧붙였다.




박미주 기자 beyon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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