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기댈 언덕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시 가족 여러분.
2012년 임진년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흑룡의 기운을 받아
시민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또한 소망하시는 것들이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한 해 우리 사회는 무척 고달팠습니다.
마치 개발시대가 다시 온 듯,
성장만 좇는 외눈박이 정책 아래
세상은 승자중심으로 돌아가고 사회양극화가 깊어져
모두의 삶이 황폐해진 한 해였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승자중심의 세상은 이제 그만!
그런 세상은 결국 모두를 패자로 만드니
이제 모두가 힘을 합쳐 함께 살아갈 세상을 만들자!
이것이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열망이자
도도한 시대정신입니다.
제게 주어진 소명이기도 합니다.
취임한지 두 달 만에 맞는 새해입니다.
두 달 --.
서울시라는 거대한 배의 항로를 시대정신에 맞추어
바로잡기에는 매우 부족한 시간입니다.
10년 가까이 전시성 해도(海圖)에 의지해
항해했던 배라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서울시 가족 여러분들의 노고와 시의회의 협조로
이제 항로수정을 위한 준비는 마쳤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친환경무상급식을 막고 있던 암초를 제거했고
시립대 반값 등록금으로 교육혁신의 물꼬를 텄습니다.
시장실을 활짝 열고
현장에 나가 시민과의 소통의 장을 넓혔습니다.
2012년 예산을 전면 재검토해서
전시성 사업, 토건사업을 빼고
복지와 안전예산을 늘렸습니다.
서울시 조직도 복지, 안전, 일자리 중심으로 개편했습니다.
대규모 인사를 단행해 서울시와 구청에
새로운 기운을 주입했습니다.
파국상태에 있던 수레의 다른 바퀴,
의회와의 관계도 정상화했습니다.
시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시 가족 여러분.
이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이제 새해는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시정,’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서울’을
본격적으로 열어가는 첫해가 될 것입니다.
정치경제적 현실과 여러 지표들을 보면
새해 시민과 시청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서민들의 삶이 나아질 경기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사회양극화에 따른 갈등과 균열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삶의 어려움은 모두의 문제이지만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더욱 가중되게 나타나는 법입니다.
‘디자인 서울’의 화려한 기치 아래에는
많은 고통의 현장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 일부를 저는 성탄을 앞둔 무박2일의 투어에서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엄마와 함께 모텔방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노숙의 위기, 그 벼랑에 몰려
한 평도 안 되는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고시원이라는 이 불안한 주거에서 살아가는 서울시민이
약 60만 명 입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폐지를 주워
하루하루를 사는 할머니도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이 추운 겨울,
손자와 함께 전기장판 한 장에 의지하고 삽니다.
그나마 뉴타운 재개발이 진행되면
그 한 칸 방까지 사라집니다.
그와 함께 할머니가 아플 때 대신 폐지와 캔을 주워주고
방문 앞에 우유 한통이라도 두고 가는 생명선,
이웃까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대체 그 할머님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모텔방 아이들은 어디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뉴타운 개발입니까?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시 가족 여러분,
정부가 있고 시청이 있는 까닭은
작지만 소중한 이들의 삶을 걱정하고 보호하며
도와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시청은 성장에 눈이 멀어,
아니면 ‘디자인’과 ‘르네상스’와 ‘개발’에 현혹되어
보통 사람들의 삶, 일상생활의 소중함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런 속에서 서울은 이들 작지만 소중한 삶들을 몰아내는
도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도시가 너무 두렵습니다.
두려움은 전염됩니다.
서울은 한계계층을 아프게 할 뿐 아니라
중산층까지 흔들리게 만들었습니다.
아픔을 알고, 그것이 두렵다면, 고치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희망을 발견해야 합니다. 아니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것이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고
정부와 서울시가 해야 할 입니다.
그러나 정부와 서울시가
허상에 현혹되어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
고통 받는 이들을 지킨 것은 시민들이었습니다.
팔순이 넘으신 노구를 이끌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시는 할머님.
당신도 한 부모 가족의 가장이면서
동네 곳곳의 더 어려운 이웃을 살펴
작은 도움의 손길들과 연을 맺어주시는 ‘나눔 반장님’
방학이라 급식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끼니를 마련해주시는 동네 식당 사장님.
이들이야 말로 관청이 한눈팔고 있을 때
서울과 서울시민을 지킨 진정한 영웅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참된 희망의 씨앗을 보았습니다.
바로 여기에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서울 시정,’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서울’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서울 시정’에서
시민은 고객이 아니고 시청은 기업이 아닙니다.
시민은 홍보 마케팅의 대상이 아닙니다. 주권자입니다.
이끌리고 가르침 받으며 통제받는 시혜대상이 아니라
복지를 누릴 권리를 가진, 시정의 주체입니다.
서울시정이 추구해야 할 것은
효율, 창의, 디자인, 르네상스가 아닙니다.
이들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시정이 정말 추구해야 할 것은
시민 각자의 행복과 평화입니다.
자라나는 어린이, 학생, 보육문제로 힘든 엄마,
일자리 찾는 젊은이, 노년을 걱정해야 할 어르신 ---,
이 모두의 삶을 지키는 데에 시청의 존재이유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 중심의 서울시정은
고달픈 시민들을 위한 쉼터, 의지할 언덕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쉼터는 시청 혼자서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함께 누릴 수 있습니다.
2012년, 우리는 이러한 사람 중심의 서울시정을 만드는
항해를 시작할 것입니다.
함께 만드는 시정에는
물론 이해관계의 상충과 갈등도 생겨나기 마련입니다.
날이 맑으면 우산장사가 울고 비가 오면 옹기장사가 웁니다.
공공장소에서의 흡연문제,
시청 앞의 스케이트장 조성 같은 문제에도
이해관계가 부딪치고 갈등이 생겨납니다.
갈등을 조정하고 예방하며 완화하는 것이
바로 시청이 할 일입니다.
과거에는 당장의 효과를 위해 갈등의 양산이 분명한
뉴타운, 재개발사업들을 남발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일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난마처럼 얽힌 재개발, 뉴타운 관련 갈등을
해결해야 할 뒤치다꺼리를 물려받았습니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만
함께 고민하고 의논해서 해법을 찾아낼 것입니다.
곧 시정 3개년계획을 발표할 기회가 있을 것이기에
오늘 이 자리에서는 2012년에 착수할
몇몇 중점 과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시정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2012년, 시정의 핵심목표는
사람과 복지 중심의 새로운 시정을 추진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시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
서울시민복지기준선을 시민들과 함께 만들겠습니다.
빈곤 사각지대의 생계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공공임대주택 8만호 공급해 시민의 집 걱정을 덜어드리며,
공보육 인프라를 확대해 육아의 부담을 덜도록 돕겠습니다.
또한 대학생 학자금 부담을 완화하는 등
교육비 부담 없는 교육여건을 만들고,
사회적 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 확보하여 청년에서 노인까지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 만드는 일에 진력하겠습니다.
더불어 가계 부채에 시달리는 각 가정에
힘이 되어드릴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찾겠습니다.
재해로부터 안전한 서울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어린이와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안전 서비스를 확대하고
분산식 빗물관리 시스템을 구축해
재난을 사전에 예방하는 데에 역점을 두겠습니다.
또한 사회적 고려 없는 개발로 사라져가는
공동체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서
서울시 마을 공동체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해
마을 공동체를 육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시 가족 여러분,
올해에는 총선과 대선이라는
두 개의 큰 정치적 일정이 잡혀있습니다.
사회적 균열이 깊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흔들림 없이 서울시정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중앙 정부와도 도울 것은 적극적으로 돕고
지원받을 것은 적극적으로 지원받도록 할 것입니다.
새롭게 구성될 국회와도 긴밀하게 협력해 나가겠습니다.
참된 지방 분권의 시대에 맞는 법률적인 개선 역시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전국이 하나의 경제권으로 엮여진 지금,
서울은 섬이 아니며 서울만의 발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수도권의 광역적 협력관계를 강화해나가고
지방과의 균형발전 문제에 대해서도
현명하게 풀어나가겠습니다.
경색된 남북관계, 예측할 수 없는 북한 정세 역시
서울의 균형발전은 물론
서울 시민의 삶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입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지만,
작은 일이라도 긴장을 풀고
평화를 여는 데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면
서울시 차원에서 시도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경평전 교류와 서울시향의 평양공연을
우리 통일부와 북한당국에 제의하는 바입니다.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시 공직자 여러분,
서울시를 시민이 쉴 언덕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 오랜 동안 서울시정의 중심에는
사람이 빠져있었습니다.
항로수정에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에서
단 한 순간도 뒤로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방법도 없습니다.
이 일은 시대정신을 따르는 일이며
역사의 수레바퀴가 향하고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가족 여러분,
얼마 전 여러분들은 오랜 동안 고락을 같이해온
유능한 동료들과 헤어지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저 역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희생의 아픔이 있었기에
새롭게 구성된 서울시의 조직에
새로운 바람과 활력이 약동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제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동료이고
시청을 재탄생시킬 역사적 과업을 같이 할 동지들입니다.
저는 서울시 가족 여러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서울 시민 여러분.
엄혹한 환경 속에서도, 고단한 일상 속에서도
각기 소중한 삶을 나름대로 훌륭하게 이끌어 오신
모든 분들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야 말로 서울시정의 주인이자 존재이유입니다.
여러분들이 힘들고 지칠 때 기댈 쉼터로
서울시가 탈바꿈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돕고 이끌어주십시오.
여러분의 참여 속에서만 시민 중심의 서울 시정,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서울시가 만들어집니다.
서울시민 여러분, 그리고 서울시 가족 여러분,
2012년, 흑룡의 새 해를 맞아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 박원순은 이를 위하여 마지막 한 방울의 땀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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