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극 한국해양연구원 원장
'해양영토'. 아직은 우리에게 생소한 단어다. '영토'란 의례적으로 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육지 공간을 말하는 것이니 '해양영토'라는 말은 어찌 보면 조금 모순된 단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광의로 해석한다면 '영토'는 '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육지와 해양의 공간'이라 정의할 수도 있다.
영토에 대한 관심이 육지에만 국한되어 있을 때 바다는 굳이 주인을 가릴 필요가 없는 공동의 공간이었다. 이는 17세기까지 네덜란드의 법학자 그로티우스가 주장한 '항해자유의 원칙'이 통용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지구의 환경 변화, 육상의 자원 고갈, 협소한 생활공간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바다가 주목 받기 시작하면서 해양영토를 확장하기 위한 각국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해양영토를 확장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주변의 해양영토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이 더 시급한 상황이다. 한반도 주변 해역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북한, 중국, 일본 및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주요 해상교통로가 되고 있을 뿐 아니라 주요 연근해 어류를 어획하는 대표적인 어장이 되고 있다.
특히 독도, 백령도, 가거도, 이어도 등 주요 접경 해역은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지역으로 경제적, 지리적, 군사적 요지인 동시에 해양예보, 기상예보, 어장예보, 지구온난화, 해상교통 안전 및 해난재해 방지에 필요한 해양환경의 핵심자료를 획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요 접경 해역은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국과의 양안 거리가 400해리 미만으로 EEZ 획정 시 중복해역 문제에 대한 합의가 어려운 상황이며, 지금도 중국 어선의 불법 어로행위나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 등 우리나라 해양영토 관할권을 위협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주변국과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는 우리의 해양영토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정치적, 외교적 대응보다 보편성을 갖는 과학연구의 결과로 영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더욱 효율적이다.
이에 정부에서는 한반도 주변 해역을 입체적으로 관리하는 '해양관측망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독도, 백령도, 가거도 및 이어도 등 우리나라 선단해역에 해양과학기지를 설치해 양질의 해양ㆍ기상ㆍ환경요소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함으로써 해양예보, 기상예보, 어장예보의 적중률을 높이고 지구환경 문제, 해상교통 안전, 자연재해 등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핵심자료를 생산할 수 있다.
서남해의 이어도와 가거도에는 2003년과 2009년에 각각 해양과학기지를 완공했으며 2013년에는 독도에, 그리고 2015년에는 백령도에도 해양과학기지가 완공될 예정이다. 여기에 지구 밖 3만5000㎞에서 24시간 한반도 주변 바다를 감시하고 있는 천리안 해양관측위성과 전천후레이더(SAR)를 탑재한 아리랑위성을 이용하면 더욱 입체적이고 효율적인 해양영토 관리가 가능해진다.
앞으로는 수중에 해저 케이블을 설치해 바닷속에서 들리는 생물음이나 수중이동체의 소음을 감지하고, 수중무선통신기술로 해저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기술도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불법 어선의 침입이 의심되는 지역에 장기간 수중에 체류하며 플랑크톤의 밀도나 수중 내부파랑을 관측하는 수중 글라이더를 배치해 활용한다면 공중, 해상, 수중을 연결하는 3차원 입체관측망이 완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 대한민국, 21세기 해양의 시대에 육지보다 4.5배나 넓은 소중한 해양영토를 지키는 일에도 첨단의 해양과학기술력을 동원하는 '전략'이 필요한 때다.
강정극 한국해양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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