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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망]냉혹했고, 때로는 호탕했던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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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사망]냉혹했고, 때로는 호탕했던 김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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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은둔형 지도자, 철저한 공산주의자이자 37년간 북한을 철권 통치한 독재자. 그러나 때로는 개방적이고 호탕했으며 예측 불가능한, 예술과 여자를 사랑한 '통 큰' 남자. 19일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라이프 스타일'은 이렇게 요약된다. 이런 면모는 그를 만났던 사람들의 말과 그가 남긴 흔적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2007년 10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차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 위원장은 일정을 넘겨 체류해달라고 전격 제안했다.


우리 측의 거절로 체류 일정이 조정되진 않았지만, 정치인이 아닌 개인으로서 이처럼 과감하게 호감을 표시하는 그의 자세는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국내 정치인들은 이런 그를 "똑똑하고 예의바르다", "호탕하고 결단력 있다"고 평가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북에서 만난 모든 사람 가운데 가장, 그리고 홀로 유연했다"고 김 위원장을 기억했다.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금강산관광사업 최종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중간역할을 한 인물도 김 위원장이었다.


예술, 특히 영화에 조예가 깊었던 점도 김 위원장을 기억하는 한 가지 포인트가 될 수 있다. 체제선전용 작품 '꽃피는 마을', '꽃 파는 처녀' 등 대작 영화를 주도적으로 제작했고, 편집에 직접 참여한 '한 여학생의 일기'를 2007년 칸국제영화제에 출품시키기도 했다.


한반도 안팎에서 '동거녀' 쯤으로 기억되는 여성 4~5명과 때로는 영화같은, 때로는 차가운 사랑을 나눈 이력은 그를 '여성 편력이 심한 남자'로 기억되게 만드는 요인이다.


물론 독재자로서의 냉혹한 이미지도 간과할 수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방문할 때면 보안을 이유로 늘 기차를 이용하고, 능숙한 파파라치가 아니라면 결코 자신의 모습을 포착할 수 없도록 하는 철두철미함이 한 단면이다.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 사태 등으로 한반도를 수 차례 혼란에 빠뜨리고 이렇다 할 해명이나 직접적인 사과 없이 눈을 감은 점은 "9ㆍ19 공동성명에 따라 전제조건 없이 6자회담을 하루빨리 재개하자"던 전향적인 태도마저 영원히 빛바래게 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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