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을 일은 없지만, 웃기는 일은 너무 많았다. SNS는 방송보다 빨리 사건들을 전달하고, 같은 속도로 사람들은 이를 희화화 했다. 국회의원은 코미디언을 고소하고, 심의기관은 예능프로그램의 문법과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댔다. 웃음에 대한 시청자의 기대치는 높아지는데, 점점 방송을 만들기는 어려워졌다. 그래서 <10 아시아>가 뽑은 ‘올해의 예능’은 축하보다는 격려, 감탄보다는 감사에 가깝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고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웃음을 주는 사람들, 웃으며 기억할 순간들이 존재 했다는 사실이다.
둑이 터졌다. 아슬아슬했던 위기는 현실이 되었고, 시청률이라는 지표를 들이밀지 않아도 2011년의 예능이 상승세를 멈췄다는 것을 눈치 채기는 어렵지 않다. 여전히 MBC <무한도전>은 건재하고, SBS <런닝맨>은 “비로소 자신만의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위치에까지 도달” (장경진) 했지만 MBC <놀러와>와 KBS <해피투게더>는 개편을 거듭하며 난항 중이다. 유재석은 지금도 최고의 플레이어지만, 더 이상 그를 만능열쇠라 부르기는 어렵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물론, 스튜디오 진행에서도 본연의 캐릭터를 활용하던 강호동은 아예 잠정 은퇴를 선언했다. 강력한 캐릭터를 중심에 놓고 인물을 편성하는 것이 방송의 기본이라면, 강호동의 퇴진은 대체재를 구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타격인 셈이다.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에 출연한 유세윤이 자리에 없는 강호동을 향해 “나 지금 여기서 뭐하는 거죠?”라고 묻는 것은 단지 자조의 말이 아니다. 사나운 강호동이 있기에 건방진 유세윤이 가능하다. 전천후의 유재석이 있기에 천방지축의 이하늘이 가능하다. 건재 할 때보다, 지금에서야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유-강 라인의 위력은 대한민국 예능계와 그 운명을 같이 하고 있었던 셈이다.
압도적인 1인자도, 뉴 페이스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예능 침체의 원인을 두 1인자들에게 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문제는 양강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균열을 틈 타 부각될 뉴 페이스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SBS <힐링캠프>와 KBS <승승장구>는 프로그램 고유의 분위기를 구축하는 데 까지는 도달 했으나 파급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신설 예능들은 실험을 하기 보다는 과거의 포맷을 재탕하거나 수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전체적으로 “뜨거우면 잡음, 훈훈하면 심심”(최지은)했던 방송들 사이에서 tvN <리얼 키즈 스토리 레인보우>가 돋보였던 것은 단지 어린이들의 귀여움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서사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제작진의 접근 방식 때문이었다. “예능의 새로운 방식을 보여준 프로그램들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성과는 “유일했기에 기억해 둘 필요”(위근우)가 있는 것이다.
지난해의 기대주들 역시 참신함의 부족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다. KBS <해피 선데이> ‘남자의 자격’은 유사한 미션이 반복되면서 맥없이 급속 노화 했고, <황금어장> ‘무릎 팍 도사’의 폐지로 시간 구성에 변화가 불가피해진 ‘라디오 스타’는 “본의 아니게 어깨가 무거워진” 상황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보잘 것 없는 웃음과 효용 없는 관심의 아름다움을 밉지 않은 뻔뻔함으로 밀어 붙이는”(백은하) Mnet <비틀즈 코드>와 배다른 쌍생아처럼 기묘한 경쟁을 벌여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전 시즌의 영광을 수성하는데 실패한 Mnet <슈퍼스타 K 3>은 심지어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난립으로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출연자와 방송의 수급구조는 기형적으로 변했고, 이슈 메이킹을 위해 경쟁적으로 높아지는 상금은 그 자체로 제작진에게 부담이다. 파격을 업고 등장 했으나 파장은 진원에서 멀어질수록 미약해 지는 법. 시간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충격적인 반전을 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예능의 운명인 것이다.
아직도 유재석과 강호동이다
그런 점에서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는 잡음의 온상일지언정 올 한해, 가장 강렬하게 예능으로서의 운명을 따른 프로그램이었다. ‘좋은 가수의 좋은 무대 ’라는 더할 나위 없이 교양적인 의도로 출범한 이 방송은 결국 “‘노래를 잘한다는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이고 고전적인 질문을 던지는데 성공”했지만 “잔인한 원칙과 만나 자주 삐걱”(조지영)거리면서도 결국 “취향에 위계를 세우는 불가능한 일을 예능의 논리로 가능하게 만들”(이승한)었다. 그 과정에서 “뮤지션과 엔터테이너의 경계에 선 가수들의 정체성이 곧 프로그램의 성격으로 이어지는”(김선영) 예상외의 지점을 통해 방송은 새로운 인물을 발굴하기도 했고, 시청률과 음원수익이라는 뚜렷한 성과를 남겼으며 “KBS <불후의 명곡>의 탄생에도 일조” (이가온) 했다. 그러나 채 1년이 되지 않았음에도 방송은 “더 이상 문제적이지도, 뛰어나지도 않은”(김선영) 뜨겁기만한 감자가 되었다. 자극은, 결국 더 큰 자극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한해의 예능을 돌이켜 보기 위해서는 유재석과 강호동의 힘을 빌어야 한다는 사실은 현재 예능의 지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다. 이제 “혁신적이거나 압도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성실하고 노련”(김희주)한 <무한도전>은 꾸준히, 잘 하는 것을 잘한다. “강호동을 두 번 잃은 셈”이었던 <해피선데이> ‘1박2일’은 “거대한 리더 없이도 존속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증명”(윤이나)하기 위해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전자는 유재석이라는 리더를 통해 “마이너리티를 대변하기 위해 출범”했지만 “‘말하는 대로’를 통해 드디어 보편을 말하기 시작”(윤희성)했고, 후자는 수많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기어이 강호동이라는 리더가 사라지고 나서야 “오히려 각자의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정석희)는 새 장을 펼칠 수 있었다. 존재하거나, 부재하거나, 프로그램에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아직도 유재석과 강호동이다. 그리고 이들의 방송은 지금도 주목해야 하고, 관찰할 만하고, 심지어 즐거운 무엇이다.
1인자의 바통, 회의실과 편집실이 이어받다
실마리는 환경이다. “논란 많고 빠르게 변하며, 심지어 매주 한편 씩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하는 장르”에서 1인자는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 뛰어남을 꾸준히 유지하기 때문에 소중하다. 그런 까닭에 이제 그 바통을 이어 받을 자리는 무대가 아닌 회의실과 편집실일지도 모른다. <무한도전>은 ‘12살 명수’에 이르러 “개인의 서사와 상황극, 시청자들의 추억을 결합시켜 현실, 가상, 기억을 오가는 초현실적인” 방송을 만들어 냈고 이것은 “장르와 장르 사이의 무엇”(강명석)을 지향하는 김태호 PD의 방향성이다. ‘1박 2일’이 위기를 딛고 “스타플레이어보다 강한 팀워크의 위력”(이지혜)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도 그 중심에 나영석 PD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케이블 시장은 점차로 성장하고, 종편의 출범으로 채널은 다양해졌다. 기회는 늘어났고, 경쟁은 심화되었다. 심지어 <나는 꼼수다>는 TV라는 플랫폼의 절대 권력에 최초의 일격을 가하기도 했다. 명맥을 유지한 KBS <개그 콘서트>에 역습을 가한 tvN<코미디 빅리그>의 김석현 PD나 tv N < SNL 코리아 >로 하이브리드 예능을 시도하는 장진 감독의 가능성은 그런 점에서 올해의 말미에 등장한 일종의 예고편이다. 머리에는 상상력을 채우고, 가슴에서는 두려움을 비워야 한다. 예능의 곡선은 아직 고개를 숙일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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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윤희성 nine@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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