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서상초 '예술꽃씨앗학교' 열 달, 그 이야기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사다리. 높은 곳이나 낮은 곳을 오르내릴 때 디딜 수 있도록 만든 기구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바로 '디딜 수 있다'는 것이다. 사다리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누군가를 도와주는 착한 기구다. 어디를 향해야 할 지 모르는 불안한 발길에 든든한 발판이 돼주기 때문이다.
이 '사다리'가 어느 날 강원도 춘천 서상초등학교에 나타났다. '교육희망사다리 구축 사업' 가운데 하나인 '예술꽃씨앗학교'가 시작되면서부터다.
소외 계층 학생들이 교육으로 사회적 이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교육희망사다리 구축 사업'. 만 5세 유아공통과정인 '5세 누리과정'과 '돌봄교실' 확대,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학교 적응을 돕는 '다솜학교' 설립, '토요문화학교' 등이 그 구체적인 사업 내용이다. 정부가 '교육희망사다리 구축 사업'으로 꿈꾸는 사회는 '사다리'가 있는, 모두가 '공생(共生)'하는 사회다. '사다리'가 어떻게 소외 계층 학생들을 보듬는지 '예술꽃씨앗학교'의 사례에서 직접 들여다봤다.
◆장애 가진 아이까지 모두 감싸 안는다=42명. 춘천시 외곽에 있는 서상초등학교의 전교생 수다. 학교 규모는 작지만 어딘가 남다르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몇 몇 눈에 띈다. 이 학교에서 소외 지역에 있는 소규모 초등학교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예술꽃씨앗학교'가 시작된 건 지난 3월의 일이다. 그 사연은 지난해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 창고를 정비해 찰흙 수업을 하던 서상초등학교 교사 김명희씨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3급 지적 장애를 가진 영태의 달라진 모습 때문이었다. 6학년이지만 한글도 못 읽는, 한여름에도 털옷을 입고 다니는 영태. 평소 같으면 앉아서 5분도 못 버텼을 이 아이가 찰흙을 손에 쥐어주자 2시간이 넘게 집중을 하고 있었다.
영태의 변화를 본 김씨는 욕심이 생겼다. 부족한 예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답은 '예술꽃씨앗학교' 밖에 없었다. 서류 심사와 현장 심사 끝에 서상초등학교는 '예술꽃씨앗학교'에 이름을 올렸다.
'예술꽃씨앗학교'가 서상초등학교에서 첫 발을 내디디던 때 영태는 이미 졸업을 한 상황이었다. 아이들 곁을 찾아온 '사다리'의 도움을 받은 건 또 다른 지적 장애 아동들이었다. 산만했던 이 아이들은 문화예술교육을 받으면서 수업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고, 서로 함께 어울리는 법도 배우게 됐다.
김씨는 "문화예술교육은 아이들에게 교과 공부 이상으로 큰 교육적 효과를 안겨준다"며 "'예술꽃씨앗학교' 등을 운영하면서 실제로 문화예술교육이 인성과 창의성 교육 전반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문화'라는 '사다리'가 가진 힘, 연구 결과에서도 드러나=소외 계층 학생들에게 '문화'가 발을 디딜 수 있는 '사다리'가 돼준다는 사실은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연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박재은)과 한국교육개발원(원장 김태완)이 최근 발표한 '한국형 창의성 지수 측정 결과'는 '예술꽃씨앗학교'가 '창의인성교육모델학교'나 일반 학교보다 더 뛰어난 성과를 냈음을 말해준다. 학생의 창의적 사고와 교사의 창의적 교수법, 문화예술교육과정 운영 등을 평가한 이 창의성 지수에서 '예술꽃씨앗학교'는 46.37인 일반 학교에 비해 더 유의미한 51.9를 받았다.
'예술꽃씨앗학교'가 아이들의 사회성을 키워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2010 학교문화예술교육 성과 평가 연구'는 '예술꽃씨앗학교 지원 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며, 특히 공동체 의식을 배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썼다. 결국 문화예술교육이 소외 계층 학생들을 충분히 보듬어줄 수 있다는 얘기다.
9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에 따르면, 현재 '예술꽃씨앗학교'는 강원도와 제주도, 부산 등 전국에 26개 초등학교가 있다. 소외 지역의 400명 이하 소규모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1인 1예능 교육을 하는 '예술꽃씨앗학교'에 선정되면 4년 동안 연간 1억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성정은 기자 j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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