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행정법원이 어제 KT 2세대(2G) 서비스 폐지를 승인한 방송통신위원회의 결정에 제동을 걸었다. 폐지 승인을 정지시켜 달라는 2G 가입자들의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15만9000여명의 2G 가입자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폐지 승인 과정에 '절차적, 실체적 위법의 여지가 없지 않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법원이 방통위의 결정에 하자가 있다고 지적한 셈이다.
법원의 결정은 방통위가 소비자 보호에 얼마나 무심한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방통위는 3년 가까이 된 지상파 고화질 방송 재송신을 둘러싼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사업자 간의 분쟁도 여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송신 중단 사태가 벌어지자 부랴부랴 중재에 나서 8일 만에 재개되긴 했지만 그동안 770여만명의 시청자들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봐야 했다.
그뿐 아니다. 내년 말 디지털 방송 전환을 앞두고 취약계층에 대한 디지털 전환 지원 실적도 9%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등 통신비 인하 정책도 소비자의 체감도에 미치지 못한다. 그런 중에도 무더기 종편 선정, 미디어렙 법안에 대한 어정쩡한 입장 등으로 정치적 논란만 키웠다.
사정이 이러니 방통위가 정부 업무평가에서 꼴찌를 한 건 놀랄 일이 아니다. 방통위는 정부 업무평가 보고회에서 총체적으로 낙제점을 받았다. 가장 역점을 둔 과제들에 대해 평가하는 '핵심과제' 항목에서 최하등급인 '미흡'을 받았다. '서민생활 안정' 분야도 최하점이다. 평가 항목 8개 중에서 상위 등급인 '최우수'나 '우수'를 받은 분야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도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지난 3월 재임명돼 최장수 각료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성적'으로 재임명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해진 것이다. 방통위를 변화시켜야 한다. 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상임위원을 정치성을 배제하고 방송과 통신 전문가로 채워야 한다. 청와대, 여당, 야당이 각각 추천하는 제도 아래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 합의제 기구인데 실제로는 최 위원장이 독임제 부처보다 더 큰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이상한 구조도 고쳐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방송도 통신도, 소비자도 산업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방통위의 존립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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