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지선 기자]
'오늘은 무얼 먹을까' 만큼은 아니어도 '무얼 입을까'도 일상에서 고민하는 문제다. 연말이 되자 모임과 행사가 많아졌다. 좀 차려입어야 한다. 게다가 특정 의상을 입으라는 '드레스 코드'가 적힌 초청장을 받으면 옷입기는 조금 더 신경쓰인다.
기자는 며칠 전 '이브닝 드레스(evening dress)' 가 드레스 코드였던 행사에 다녀왔다. 갖고 있는 옷 중에 꽤 멋지다고 생각하는 재킷과 평소 잘 안신는 하이 힐을 선택했다.
이브닝 드레스는 저녁부터 밤까지 입는 정식 예복이다. 각종 행사에서 여배우들이 입는 드레스가 이브닝 드레스의 정석이다. 이브닝 드레스 입은 여성의 짝은 연미복 차림의 남성이다.
한국에서, 평범한 여성이 입는 드레스라면 웨딩 드레스가 유일할 것이다. 옷장에 이브닝 드레스를 걸어 둔 여성도 거의 없을 것이다. 기자는 웨딩 드레스 입을 기회(?)는 아직 없었지만, 이브닝 드레스는 두 번 입어봤다. 꽤 오래전인 1996년 일이다. 한번은 예전 직장 창사 기념일 파티, 또 한 번은 외국 출장 때였다. 두 번 모두 정식 드레스라기보다 긴 원피스에 화려한 목걸이와 반짝이는 클러치 백을 들어 흉내만 낸 정도였다. 그 옷조차 선배에게 빌린 것이었다.
옷을 빌려 입어야 하는 게 못마땅했었다. 하지만 외국 생활 오래한 선배의 조언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드레스 코드를 맞추는 게 예의야. 행사 참석하는 이들 모두가 드레스에 턱시도를 입을 거야. 그 자리에 바지 정장에 단화를 신고 가면 음식 서빙하는 사람처럼 보일거야. 한복 입은 자리에 힙합 뮤지션처럼 헐렁한 청바지와 티셔츠 입고 등장했다고 생각해봐."
잘 입는 옷이란 때와 장소, 상황에 맞는 스타일링이다. 결혼식 하객으로 갈 때, 조문 갈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약속처럼 지켜지는 것, 그게 드레스코드다.
연말 동창회에는 진주 목걸이로 우아하게 연출할 것을, 파티에는 진한 립스틱과 화려한 액세서리가 좋다는 식의 스타일링 조언이 넘쳐난다. 그래서일까? 연말 행사를 위해 튀는 디자인의 액세서리를 샀다가 행사가 끝나면 환불하는 얌체 쇼핑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드레스 코드 맞추기 위해, 단 한번을 위해 쇼핑하는 것은 어리석다. 드레스 코드는 모임을 즐기는 작은 아이디어일 뿐이다. 지난해 핑크색이 드레스 코드였던 모임에 핑크 옷을 입을 필요는 없다. 브로치, 헤어밴드, 스카프가 핑크색이면 그만이다. 그것도 없다면 포장할 때 쓰는 핑크색 리본을 팔찌처럼 활용하거나 목걸이 군데군데 리본장식으로 묶어주면 그만이다.
옷장을 살피면 평소 눈에 들어오지 않는, 촌스럽다고 생각해 평소 외면하던 소품들이 한두 개쯤 있을 것이다. 다소 촌스런 것들이 모임에서는 오히려 빛날 수 있다. '평소와 다른 과감한 스타일링'의 진짜 뜻은 옷장을 잘 살피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된다.
박지선 기자 sun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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