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좋은 팀이라고 들었습니다. ‘빌리진’으로 분위기를 이끌고 ‘Song 2’로 절정에 도달한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유능한 DJ 디구루가 멤버로 있으니 당연한 입소문이라 여겼습니다. 여기에 드라마 음악을 만들었던 제제의 감수성과 리얼 드럼을 연주하는 디알의 파워가 더해졌으니 댄스 플로어의 사람들이 이디오테잎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은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온갖 기계 장비를 갖춰놓고서 비트의 주도권을 드럼에게 종종 내주면서까지 밴드의 형태를 유지하는 일이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증명되어 온 사실이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우주의 전사들이 가장 흥미로운 싸움을 벌일 때는 레이저로 상대를 흔적 없이 분해해버릴 때가 아니라 “지잉”하고 꺼낸 든 광선 검으로 고전적인 검투를 벌이는 상황이잖아요.
그러나 이디오테잎은 그 광란과 박진감을 음반에 담는 일의 불가능함을 알아차린 듯 첫 번째 정규 앨범 <11111101>의 결을 단정하게 빗어놓았습니다. 다프트펑크를 연상시키는 일렉트릭 록스타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인조인간의 모험을 더듬는 대신 이들은 생활의 풍경을 점묘화로 재구성하는 쪽을 택합니다. 플로피 디스켓을 활용한 앨범 패키지부터 타령의 리듬에서 출발했다는 ‘Even Floor’나 구전동요를 소스로 사용한 ‘Toad Song’은 마치 픽셀로 분해된 나의 얼굴을 보는 듯 낯선 익숙함을 만들어내거든요. 그러니까 이들은 광선 검조차 없을 때 꺼내들 수 있는 고유함의 맨주먹까지 갖춘 셈입니다. 춤추기 좋은 무대, 듣기 좋은 앨범. 제대로 된 싸움꾼이 등장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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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윤고모 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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