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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국가소송제(IS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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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관련해 뜨거운 감자가 된 용어가 있다. 이번 주 지식의 주인공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Investor-State Dispute)'가 그것이다. ISD란 정부의 정책결정으로 인해 외국의 투자기업이 손해를 입었을 때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제소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무역협정 등을 통한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당한 차별대우가 가져오는 피해를 막기 위해 탄생했다. 기업이 해외에 투자했는데 해당 국가가 개입해 토지나 건물의 소유권을 몰수하는 등 직접적인 침해부터 이미 투자가 이뤄진 공장 등의 인가를 내주지 않는 간접적 통제에 이르기까지, 넓게는 특정 정책이나 규제가 도입돼 투자가치를 떨어뜨리는 등 손해가 발생할 경우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단심제로 운영되는 ISD…한·미 FTA에 담긴 '자동 동의 조항'이 문제


직접적 강제의 경우 굳이 손해의 문제 이전에 국가 간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는 만큼, 주로 정부의 각종 규제가 투자자의 재산적 가치를 눈에 띄게 줄이거나 재산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른바 간접수용의 경우에 주로 적용돼왔다. 제도 자체는 거래 과정에서의 부당함을 막아내기 위한 중립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1960년대부터 꾸준히 활용되어 전 세계 2500여개 투자협정(BIT)에 대부분 포함되어 왔으며 우리나라 또한 그간 체결한 BIT 85개 중 81개가 ISD조항을 담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협정이 체결된 국가 사이에선 투자자가 상대 정부를 협정위반으로 제소할 경우 ICSID의 중재 판정부에 회부된다. 중재 판정부는 3명의 중재인으로 구성되는데 각 당사국이 1명씩, 그리고 양국이 합의한 1명으로 구성돼 단 한 번의 판정으로 결정을 내리는 단심제로 운영된다.


통상 투자자가 상대 정부를 상대로 제소에 나서더라도 ISD에 따른 조정절차는 강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상대 정부가 이를 무시할 경우 투자자는 불이익을 감내하거나 아니면 투자를 철회하면 그만이다. 한·미 FTA 과정에서 유독 이 문제가 불거진 이유는 한·미 FTA의 경우 제소만 이뤄지면 자동으로 동의할 것을 정한 '자동 동의 조항'이 함께 붙어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 인정 범위 규정도 또 다른 문제…우회적 법적 대응 가능


ISD가 논란이 되는 또 다른 이유는 투자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범위가 넓게 규정되어 있다는 데 있다. 국내 기업도 외국기업의 지분을 보유해 마음에 들지 않는 정부 규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A-B 국가 간에 체결된 무역 및 투자협정에서 ISD조항이 빠져 있더라도 B-C 국가 간에 체결된 협정엔 ISD조항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A국가의 기업체는 C국가의 업체를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얼마 전 불거진 미국의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가 호주의 금연법을 상대로 제기한 수십억달러 규모의 투자자-국가 소송이 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호주 FTA엔 ISD가 배제돼 있다. 하지만 호주와 홍콩이 18년 전에 체결한 투자협정엔 ISD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최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려 싸우고 있다”며 호주 당국이 입법 절차를 완료한 새로운 금연법의 경우, 담뱃갑 포장지에 회사 로고나 광고 문구를 제거하고 글씨·색상 등을 통일하도록 정하고 있다. 필립 모리스사는 밋밋한 담뱃갑이 금연에 효과적임을 입증할 수 없을 뿐더러 회사 로고를 제거하는 것이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소송을 내겠다고 한 것인데, 직접 제기가 불가능하자 홍콩에 소재한 필립모리스 아시아를 통해 우회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선 것이다.


즉, FTA나 BIT의 체결대상이 넓어질수록 어느 경로를 통해서든 정부의 규제 및 정책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경로가 넓어지고 있고, 이는 사실상 새롭다기보다는 늘 직면해 있던 실정이기도 했다. 다만, 정부가 환경·보건 등 공공성과 관련된 정책을 내놓아도 앞서 보듯 지적재산권 침해부터 영업이익 손실까지 다양한 구실로 거액을 물어야 할 위기를 맞을 수 있는 상황에서, 결국 소송이 제기되면 자동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정해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ISD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ISD 자의적으로 해석 가능


일반적인 경우 투자자는 여건이 불리하거나 수익이 기대에 못 미치면 투자를 철회하거나 투자방법을 변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초창기 중국에 진출한 기업이나 북한의 개성공단 사례에서 보듯 기본적으로 투자자의 자산에 속하는 공장이나 집기 등에 대해 과도한 규제를 걸거나, 심지어는 압류하고 억지 주장을 펼치는 등 현저하게 불공정한 처사가 빚어질 때마저 투자한 기업들에 그 위험을 감당하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 ISD를 필요로 하는 기업들의 견해다.


이런 맥락에서 마련된 ISD임에도 앞서 보듯 부당함의 해석범위가 현저하게 넓고, 규제의 범위와 정도 또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기업이 이를 자의적으로 남용할 가능성이 함께 따라붙는 것이다. 일단 ICSID에 제소돼 내려진 판정에 불복할 경우 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를 거쳐 결국 보복관세 등 무역제한을 받게 될 여지가 있는 만큼 기본적으로 제소되지 않거나 소송에 응하지 않는 것이 정답이다.


이미 FTA가 비준된 한국의 경우 소송에 응하지 않는 것은 '자동동의 조항'으로 인해 불가능하며, 남은 길은 소송의 여지가 남지 않도록 문제가 불거진 부문을 완전히 민영화해 시장에 맡기거나, 규제에 따른 피해보전을 국적불문 동등하게 제공하는 방법 등이 있다.


논란이 커지면서 ISD 자체에 대한 오해나, ISD를 둘러싼 제소와 관련된 많은 루머가 횡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한발 물러서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ICSID가 미국의 영향력을 많이 받는 세계은행 산하기구이며 미국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를 제소했다가 패소한 경우(22건)가 승소한 경우(15건)보다 많다고 하지만, 미국을 상대로 제소한 기업이 승소한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미 FTA는 또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 국민연금을 비롯한 공공퇴직제도, 건강보험·산재보험과 같은 법정 사회보장 제도, 한국은행 등 통화당국에 의한 금융서비스, 공중도덕 보호 및 생물의 생명·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조치, 필수적 안보이익 보호 조치는 ISD의 적용 대상에서 예외로 빼두었다. 다만, 예외로 해두었다는 것이 안심해도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적용대상에서 예외를 규정한 만큼 현저한 침해에 대해선 다툴 수 있다는 예외도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준영 기자 foxfury@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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