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금연정책에 ISD 소송
[아시아경제 이공순 기자]호주의 금연정책에 다국적 담배회사인 필립 모리스가 투자자 국가제소조항(ISD)을 인용해 국제상사중재원에 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필립 모리스는 지난 21일(현지 시각) 호주 의회가 통과시킨 ‘단순 담배갑’ 포장(특정 마크 없이 회사명 및 제품 이름만을 규정된 크기, 색채, 위치에 표기토록 한 포장) 법안이 지적재산권 위반이라며 호주 국내 법원과 국제 무역 분쟁기구에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이의 제기가 호주와 ISD 조항이 포함된 투자협정을 맺고 있는 홍콩의 필립 모리스 지사를 통해 나온 것을 감안할 때, 국제 소송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상사중재원(ICSID)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국가의 공공정책에 대해 다국적 기업이 잠재적 손실을 이유로 피해보상을 요구하고, 이를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ISD 조항을 원용해 국제법원으로 가져간 사례로 그 결과가 주목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필립 모리스의 손해배상 청구액이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필립 모리스는 다국적 기업이기는 하지만, 미국 S&P500 지수에 편입되어 있는 사실상의 미국계 기업으로 호주 담배 시장의 46%를 점유하고 있다.
이번 소송은 필립 모리스 홍콩 지사가 제기한 것으로 호주와 홍콩은 지난 1993년 ISD 조항을 포함하는 투자자유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미국-호주간 자유무역협정(FTA)에는 호주쪽의 요구로 ISD 조항이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호주가 자국이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 홍콩, 베트남 등의 개발도상국과의 자유무역, 투자협정에서는 ISD 조항을 포함시켰다.
필립 모리스의 대변인인 앤 에드워즈는 이날 BBC 방송에서 “호주 정부는 이 법안이 흡연을 감소시키는데 효과적이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통과시켰으며, 단순 포장(plain packaging)과 관련한 심각한 법적 문제와 관련하여 호주 국내와 국제적으로 제기되는 우려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필립 모리스는 또 이 법안을 즉각적으로 효력 정지시키고, 이 법으로 인한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잠재적 손실을 보상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또다른 담배회사인 브리티시-아메리칸 토바코사도 이 법안이 국제상표권과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은 법률 전문가들이 지적 재산권이 개별 정부에게 공중보건을 보호하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어 담배회사쪽이 이번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분석한 것으로 보도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지난 2005년부터 ‘단순 담배갑’을 금연정책의 일환으로 추천해왔으며, 호주는 이같은 정책을 법제화한 첫 번째 국가이다.
이번 소송은 유사한 법안을 검토하고 있는 영국 등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이 통신은 전했다.
호주 정부는 지난해부터 금연 및 공공의료 정책과 관련하여 다국적 기업들이 ISD 조항이 포함된 개발도상국의 지사를 통해 국제 소송을 제기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것에 맞서, 지난 4월 통상정책의 기본 원칙을 발표하고, 향후 모든 자유무역협정에서 ISD 조항을 배제시킬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ISD 조항은 외국계 기업에게 더 유리하며, 국내의 입법 및 사법권을 저해할 위험이 크다.
국제통상전문지인 <인베스트먼트트리티뉴스>는 지난 6월자 분석기사에서 호주 정부가 ISD 조항을 삭제키로 한 것은 다국적 담배 회사들의 위협 때문이라며, 우루과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벌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공순 기자 cp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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