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이 수백개 헤지펀드 이사직 겸임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대표적인 조세피난처로 전 세계 헤지펀드 대부분이 근거지를 둔 케이먼 군도에서 한 명이 많게는 수백개 헤지펀드의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의 입장을 대변해 펀드를 규제해야 할 이사회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1일자에서 케이먼군도에서 수백 개의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는 '점보 디렉터(jumbo directors)'에 대해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케이먼군도에서 최소 4명이 100개 이상 헤지펀드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 한 명은 무려 567개 이사직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70개 이상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는 사람도 14명이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모두 각각의 이사직에서 연간 최대 3만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헤지펀드 이사들은 투자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소임을 맡고 있어 펀드 매니저를 선임하고 펀드 자금의 유출입을 규제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하지만 수백개의 이사직을 겸임하는 등 정작 이들에 대한 규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케이먼 군도는 2조달러 규모인 전 세계 헤지펀드의 3분의 2 가량이 등록돼 있는 헤지펀드의 본거지지만 정작 케이먼군도 통화당국(CIMA·Cayman Islands Monetary Authority)은 헤지펀드의 독립 이사회에 정보 공개를 요구하지 않고 있다.
헤지펀드 이사들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은 전문적인 능력을 갖춘 사람들로서 많은 이사직을 수행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케이먼제도 최대 신탁서비스 회사인 DMS를 설립한 돈 세이무어는 2006년에 무려 560개 이상의 이사직을 겸임했다. 그는 "한 명의 의사가 개인적으로 1년에 400명 이상의 환자를 다룰 수 있다면 그가 병원에서는 1년에 4000명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며 한 명이 여러 개의 이사직임을 겸임하는 것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신탁 서비스회사는 수수료를 받고 헤지펀드에 전문적인 독립 이사들을 제공하는 업체들로 최근 몇년간 케이먼군도에서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케이먼군도의 또 다른 신탁서비스 회사 카른 글로벌이 실시한 헤지펀드 매니저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58%는 30개가 개인이 보유해야 할 최대 이사직 개수라고 답했다. 응답자의 3분의 1은 40개 한계라고 주장했으며 50개 이상도 가능하다고 답한 비율은 2%에 불과했다.
ABN암로에서 헤지펀드 리서 부문 대표를 맡았던 케빈 라이언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지배구조의 월마트 모델이라고 비유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지점을 맡고 있는 문어발식 경영을 꼬집은 것이다. 그는 "우리는 역겨운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지만 케이먼군도 규제 당국으로부터 징계 조차 없는 특별한 이사회 회사들을 갖고 있다"며 "향후 펀드 업계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대형 스캔들이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라이언이 최근 설립한 신탁서비스회사인 '헤지 디렉터'에서는 한 명이 최대 겸임할 수 있는 이사직 수를 20개로 제한하고 있다.
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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