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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白白한 그리움···순백의 알몸속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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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숲-11월, 하얀 늦가을 속 풍경 황홀

[여행]白白한 그리움···순백의 알몸속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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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기자]찬바람이 일렁인다. 산자락 골골마다 가득 찼던 단풍들의 붉은 아우성도 잦아들기 시작했다.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군 채 긴 겨울나기에 들어갔다. 숲도 깊은 침잠(沈潛)에 빠졌다. 사람들도 하나 둘 숲을 떠나는 이때 제 모습을 살포시 드러내는 것이 있다. 자작나무다. 잎을 모두 떨구어 내고서야 비로서 그 순백의 알몸을 수줍게 내보이는 나무. 하얀 몸뚱아리에 햇살이 비칠 때마다 강한 빛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그런 나무다.


자작나무의 아름다움이 가장 도드라질 때가 바로 겨울의 문턱으로 들어서는 이맘때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작나무숲은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연인을 태운 수레가 달릴 때 끝도 없이 펼쳐졌던 새하얀 숲으로 깊이 각인돼 있다.


또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 뒤로 끝없이 펼쳐지던 그 숲, 그리고 계절은 다르지만 만화영화 '빨간머리 앤'에서 주인공이 소꿉놀이하며 놀던 그 숲의 이미지로 더 친숙하다.

[여행]白白한 그리움···순백의 알몸속을 걷는다

지난 주말 자작나무숲을 찾아 나섰다. 강원도 인제군 남면 원대리. 인제국유림관리소에서 운영하는 '산림레포츠 숲'내에 자작나무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으로 불리는 이곳은 강원도 고성 진부령이나 태백 삼수령길을 넘으면서 스쳐지나가듯 바깥에서 바라보던 숲이 아니다. 자작나무숲 안으로 들어가 산책을 하고,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고, 만질 수 있는 오감이 통하는 그런 숲이다.


'꿈익는 마을 원대리'라는 입간판을 지나자 마자 우측으로 원정도로 비석이 서 있는 임도가 시작된다. 이곳이 총 42km에 이르는 '산림레포츠숲'의 들머리다. 산악 마라톤, 산악 자전거를 즐길 수 있도록 임도가 조성이 되어 있다. 자작나무숲까지의 트레킹은 편도 3km다. 느릿 느릿 걸어도 1시간이면 넉넉하다.

[여행]白白한 그리움···순백의 알몸속을 걷는다


길은 비포장으로 매끄럽지 않지만 걷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개의 임도가 그렇듯 이곳도 시작은 지루하다. 산 허리숲을 둘러 둘러 길을 만들었으니 바닷가나 산이 아니고서야 한 구비 두 구비 돌아서도 그저 비슷비슷한 모양새다. 단풍이 사라진 임도를 따라 10여분을 오르면 나타나는 자작나무들이 길안내에 나선다.


1시간여 오르자 단조롭고 팍팍했던 임도가 조금 넓어지면서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에 휩싸인다.


길가에 서 있는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란 간판도 심상치 않다. 그 옆에 서서 숲을 내려다본다. 온통 하얀 알몸을 드러낸 수 많은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숲으로 들었다. 휴대폰이 바로 먹통이 된다. 문명의 세상과 단절되는 이 순간 자작나무숲은 오롯이 나의 것이 된다.


백석시인의 백화(白樺)가 떠오른다.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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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수북히 쌓인 오솔길을 따라 숲으로 빨려 들어갔다. 단일 수종으로 이뤄진 숲 치고 이렇게 넓게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자작나무숲이 또 있을까 싶다. 그 길을 밟는 느낌은 편안하면서도 이국적이다. 그리고 강렬하다. 북유럽의 어느 숲이 아니면 동화 속 배경으로 설정된 그런 숲의 느낌이다. 그림동화 속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잃고 헤매인 숲이래도 고개가 끄덕여질법하다.


가까이서 보는 자작나무는 묘한 매력이 풍긴다. 왜 자작나무가 '숲속의 귀족'으로 불리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귀인의 살결 같은 수피는 하얗다 못해 은빛을 발할만큼 황홀하다. 눈부신 그 모습에 잠시 멍하니 숲을 느껴본다.


서울에서 왔다는 김주희(35)씨는 "몸체는 가늘고 여리지만 흰 수피가 빛을 반사해내는 느낌은 다른 어떤 나무보다 강렬하다"며"숲 한 가운데 서면 자작나무가 가진 기를 듬뿍 받아 마음이 맑아지고 청명해지는 기분"이라며 즐거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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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는 예부터 우리네 생활 공간에서 함께 했다. 신혼 첫날밤 부부가 백년해로를 다짐하면서 태웠던 화촉이 이 나무의 껍질이요, 산간 지역의 너와집의 지붕도 이것이다. 양반가의 자제들이 공부했던 경판이나, 경주 천마총의 천마도, 그리고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제작할 때도 일부 자작나무가 쓰여졌다고 한다. 나무의 조직이 지나치게 단단하거나 무르지 않아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새하얀 껍질에 사랑을 고백하는 글을 써 편지를 보내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낭만적인 속설은 청춘남녀의 귀를 솔깃하게 할 것이다.


자작나무숲을 한바뀌 둘러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50여분이면 충분하다. 통나무로 만든 정글집, 나무의자, 그네 등이 오솔길 마다 있어 급할것 없이 쉬어가라며 손짓을 한다.

[여행]白白한 그리움···순백의 알몸속을 걷는다


1993년 조림된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원래는 소나무 숲이었다고 한다. 자작나무 숲에 외둘러 싼 소나무들을 보면 짐작이 간다. 소나무를 일부 벌목을 하고 자작나무를 형성해 놨다. 더불어 아이들이 자연을 벗 삼아 숲과 함께 숨쉬는 '숲속 유치원'으로도 운영되고 있다.


1950년대 덴마크의 작은 산촌마을에서 시작해 1990년대 독일에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을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현재 독일에는 700여 개의 국가 공인 숲 유치원이 운영되고 있으며, 유럽 전역과 미국 등지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돌아서는 길, 자작나무들이 숲의 전령이 되어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길배웅을 한다. 얼굴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도 자작나무가 내보인 처연한 알몸에 비하면 외롭거나 쓸쓸하지 않다. 휴대폰 연결음이 울린다. 다시 문명의 세상과 소통을 시작한다.


인제=글ㆍ사진 조용준 기자 jun21@asiae.co.kr

[여행]白白한 그리움···순백의 알몸속을 걷는다


◇여행메모
△가는길=경춘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홍천을 나와 인제방향 44번 국도를 탄다. 38선휴게소 지나 인제읍 못미쳐 남전교를 건너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인제종합장묘센터(하늘내린 도리안)방향으로 간다.


이곳에서 원대리마을 자작나무숲 임도초입까지는 5분~10분 거리다. 임도를 따라 차량이 자작나무숲 부근까지 가지만 트레킹을 권하고 싶다. 땀을 흘리고 난 후 만나는 자작나무숲의 아름다움은 배가 된다.산불조심기간(12월15일까지)에는 숲산책이 제한되며 단체로 방문시(사전예약) 인제국유림관리소에서 직원이 나와 해설을 해준다. 033-460-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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