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목수 부편수 제2의 삶 김기호씨
한옥은 그에게 폭풍 같은 ‘앓이’를 선사했다. 땅 있고 돈 있어 살고 싶은 집, 그런 호사(豪奢)가 아니었다. 열정을 쏟고 때론 인생을 반추하는 동반자, 그런 존재였다. 김기호(47)씨의 ‘인생2막 뷰파인더’는 온전히 한옥을 향해 있었다.
지난 14일 비 개인 오후, 서울 남산 한옥마을. 청량한 대기속 진한 솔향에 취할 무렵, 멀리서 범상치 않은 외모의 남자가 걸어온다. 질끈 묶은 희끗희끗한 긴 머리, 캐주얼한 청바지 차림에 뿔테 안경을 걸치고 한 손엔 노트북을 들었다.
가까이서 보니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 끝에 봉숭아물을 들였다. 가만, 이 남자가 한옥 목수라고? 김기호씨의 첫인상은 일꾼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예상과 전혀 딴판이었다. 목수보다는 도인이나 학자 스타일에 가까웠다.
사진을 찍기 위해 한옥 앞에서 “포즈를 취해 달라”고 했지만 그는 곧바로 ‘설명 모드’에 빠져들었다. “남산 한옥마을은 아름답고 당당한 우리 건축을 바로 볼 수 있어 의미 있는 곳이에요. 이런 집에 살면 정말 좋겠죠?” 여기저기 다니며 전문 지식을 술술 풀어내는 걸 보면 뼛속까지 한옥 DNA가 흐르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전직이 PD였단다.
카메라 뷰파인더를 통해 세상 이야기를 전하고자 종횡무진 하던 그는 ‘인텔리’한 직업을 버리고 나이 마흔 둘에 ‘노가다’가 됐다. ‘김기호’의 인생1막 마지막장, 무엇이 그를 못 말리는 한옥 목수로 만들었을까.
사건의 발단은 2005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뉴스 프로의 막후 지휘자였던 그는 갑자기 회사로부터 해고 통지를 받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부당 해고를 당했다고 적는 편이 옳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큰 목소리를 내고자 시작한 언론노조 활동이 빌미가 됐다.
부당해고 지친 심신 달래러 간 공방에서 찾은 새인생
사내 회식자리에서 벌어졌던 상사와의 작은 실랑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3년간의 법정 싸움. 3심까지 모든 심급에서 무죄 판결을 받아 복직했으나 며칠 다니다가 그만뒀다. 왜냐고? 그의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 있었으니까.
“회사가 (부당 해고를) 인정하고 (사법·행정기관의) 결정을 받아들인 만큼 복직 명령만으로 충분했어요. 그보다 중요한 건, 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일을 찾았다는 거죠. 바로 목수였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손재주를 살릴 수 있는 취미로 목가구 만들기를 권했다. 오랜 재판 기간, 지친 심신을 달랬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얼떨결에 찾아간 공방에서 김기호씨는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경험을 했다. “처음 접하는 일이었지만 나무를 어루만지는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나무를 재단하고 껴 맞춰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꼈어요. 생산노동자의 고단함과 성취감에 취하듯 홀렸다고나 할까요. 또 흩날리는 톱밥과 솔향의 어우러짐까지…. 황홀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토요일마다 빼놓지 않고 소나무를 다듬으며 집 짓는 즐거움에 빠졌다. 그럴수록 헤어 나오기 힘든 매력에 중독됐다. 그래서 결심했다. ‘이 길이 내 길이다.’ 그런데 정작 공방으로 남편을 이끌었던 아내가 반대하고 나섰다. 앞날에 대한 확신이 불투명한 목수보다 PD 경력을 살린 다른 일을 했으면 싶었던 것.
생전 처음 가보는 길. 김기호씨는 경상북도 청도군에 있는 한옥학교 앞에 섰다. 40대를 넘어선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던 일, 나무가 좋아, 집 짓는 게 좋아 대목수가 되고자 온 그는 기대와 희망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2007년 겨울, 어느 날이었다.
성실함·실력 인정받아 1년 반 만에 부편수
한옥학교에서 4개월간 기초를 닦았다. 그리고 당대 최고 목수에게 배우기 위해 지금의 도편수(집을 지을 때 책임을 지고 일을 지휘하는 우두머리 목수)인 김창희씨를 찾아갔다. 늦은 나이에 목수를 시작한 그는 열심히 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옥 건축 현장에서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으며 머리와 손, 온몸으로 기술과 감각을 익혔다. 오직 배워야 된다는 일념뿐이었다.
여기에 뛰어난 미감, 공간감, 거리감에 사물을 정확히 보는 눈은 소질로 작용했다. 적성에 맞으니 노력이 배로 불어나고 열정도 곱절로 커졌다. 게다가 다른 목수들과 잘 어울리는 붙임성까지. 그의 실력과 적응력은 날로 늘었다.
“건축일은 협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들과 하나로 잘 뭉쳐야 해요. 무리 중에서 외지인으로는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굴러온 돌이었죠. 하지만 나이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마흔 살 전후로 보이면 형님이라 부르며 따랐고 자세를 낮춰 항상 배우는 자세로 임했어요. 그랬더니 모두들 마음을 열더라고요.”
어느 날 도편수가 그에게 말했다. 먹을 놓으라고.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다. ‘짬밥’이 얼마 안 됐음에도 가능성을 인정받아 쟁쟁한 경력자들을 물리치고 1년 반 만에 부편수가 됐다. 대개 3~4년은 지나야 부편수에 오를 수 있다. 부편수는 도편수 다음 자리로 도편수가 그린 설계를 나무에 옮겨 놓는 목수다. 먹을 놓는 사람, 일명 ‘먹잡이’라고 부른다.
‘먹을 놓는다’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먹실을 끌고 와서 잡고 있던 손을 놓는 거예요. 암호처럼 그려진 먹선을 따라 나무를 자르게 됩니다. 부편수의 표시를 보고 구멍의 깊이나 파는 깊이를 알 수 있는 것이죠.”
먹이 중요한 건, 못을 쓰지 않는 한옥의 건축 방식 때문. 기본 뼈대를 이루는 보(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을 건너지르는 나무)와 도리(서까래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건너지르는 나무), 정확한 수치로 잘라 기둥이 서로 잘 맞춰지도록 머리를 따내 엇갈리게 끼워야 한다. 아귀가 정확히 맞아야 조립이 가능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다,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는 말 들어보셨죠? 반 푼이 약 1.5mm 길이예요. 한옥의 정교한 원리가 숨어 있음을 드러낸 말입니다. 그만큼 어려운 게 한옥 짓는 일이기도 하죠.”
이 때문에 부편수가 잘못 그린 선 하나가 부실공사의 원인이 된다. 나무의 성깔을 온전히 알아야 하는 이유다. 그동안 실수도 숱하게 했다. 먹선이 짧아서 낭패 봤던 일들이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 있단다. 그는 모든 일에 통달하고 있어야 도편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한옥은 원래 현대적인 형태의 도면이 없어요. 대신 숙련된 도편수가 경험에 의해 목수를 부리고 자재를 짜 맞춰 건물을 짓습니다. 설계도가 입체로 보여야 하는데 그렇게 안 보이는 부분이 힘들더군요. 4년이 지나서야 적응이 됐습니다. 이제 목수라는 직업에 입문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렴한 비용 한옥짓기 도전하고 싶다
경상북도 고령군 고령읍에 위치한 도편수의 치목장. 목수들이 “뚝딱뚝딱” “슥삭슥삭” 대패와 끌을 들고 바쁘게 나무를 깎고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서 치목한 나무들을 건축 현장으로 날라 조립해 한옥을 짓는다. 이곳을 거점으로 보통 5~15일 가량 출장을 다니는 꼴이다.
떠돌이 목수 생활 5년, 남자 숙소생활 5년. 어쨌거나 김기호씨에겐 제2의 집인 셈이다. 일주일에 한 번 서울을 오가며 주말부부로 지내는 것만 빼면 현장에 나갈 때가 가장 즐겁단다. 보수 면에서도 만족스러울까. 김기호씨에 따르면 처음 현장에서 일당 7만원을 받았다.
요즘 정부에서 정한 정부 노임 단가를 보면 숙련공의 경우 일당 13만원, 미숙련공은 8만원 정도로 책정돼 있다. 도편수는 30만원 정도. 일을 많이 할 때는 1년에 250일 이상 작업한다. 많이 버는 것은 아니지만 꿈을 실현하고 있다는 데서 뿌듯함을 가진다는 게 그의 얘기다.
그는 집 짓는 일을 “일생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일 중의 하나”라며 “집은 그 사람의 평생이자 꿈을 실현시켜주는 역할을 하므로 만족감을 주고 삶의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정의했다.
최근 한옥마을을 부흥시키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무적이긴 하지만 한옥을 짓는 데는 상당한 돈이 듭니다. 평당 최소 1000만원 이상은 될 거예요. 20평짜리를 마련하려면 2억에 땅값까지 몇 억 정도 더 있어야 하죠. 앞으로 한옥을 저렴한 비용으로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보려 해요.”
한옥 목수 인생을 걸어온 지 올해로 5년째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성취해 행복하다는 김기호씨. 목수라고 불릴 때가 가장 기분 좋단다. 남편의 목수 일을 반대하던 아내도 언젠가 2층 한옥을 지어 보자며 긍정적으로 생각이 돌아섰다. 그래서 그는 요즘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있다.
한옥과 관련된 문화재보수기술자 자격도 준비 중이다. 그는 이제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손끝으로 한옥을 빚는다.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나무의 마음을 느끼며 온몸으로 설계하고 시공하는 한옥 건축의 매력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통 한옥이 제대로 계승·발전될 수 있는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도 손을 보탤 참이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열정과 사명감만 두둑하다면 못 해낼 것이 없죠.” 한옥 목수 김기호의 이런 불굴의 이미지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청도 한옥학교(한옥아카데미)
원래 한옥은 동네 목수들이 지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지을 수 있는 집이었다. 한데 주택이 양식으로 변하고 한옥 짓는 기술자가 희귀해지면서 전문 기술이 됐다. 한옥학교는 나무에 매료된 이들에게 한옥 건축 관련 이론과 설계 등 실습 과정을 가르쳐 준다. 연장 만지는 것부터 전동 공구를 이용해 치목을 하고 집을 다 짜보는 과정까지 3개월 과정이 있다. 현장 취업에도 도움을 준다.
대목수 양성과정
한옥 목수 전업(12주, 약 270만원)
소목수 양성과정
가구 및 소도구 제작 기법 교육(12주, 약 240만원)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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