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영식 기자] 윌버 로스 주니어(Wilbur Ross Jr.) 회장은 월가에서 가장 이름높은 투자자 중 하나이며 그 역시도 세계 최고 부호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로스의 명성도 최근의 세계 금융시장 침체 앞에서는 빚이 바랬다. 그의 이름을 건 투자펀드에 생각보다 돈이 몰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1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로스의 이름을 딴 투자펀드 WL로스앤컴퍼니는 8월 투자자들로부터 모은 자금 규모가 지난해 펀드 규모 40억달러의 10분의1을 조금 넘는 ‘부진’한 성과를 냈다. 관계자들은 WL로스 측이 올해 자금조달 목표치를 20~25억달러 선으로 낮췄다고 전했다.
사실 로스 회장 뿐만 아니라 다른 사모펀드들 역시 ‘펀드레이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로존 재정적자 위기 등으로 금융시장이 널뛰기를 거듭하면서 투자자들이 몸을 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WL로스에 문제가 하나 더 있다고 말한다. 바로 올해 73세인 로스 회장의 ‘후계자’ 문제다. 투자자들은 로스가 은퇴할 경우 그의 뒤를 이어나갈 새로운 피를 찾을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37년 뉴저지에서 태어난 로스는 예일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MBA)을 거쳤으며, 70년대부터 금융계에서 파산관련 자문전문가로 유명세를 얻었다. 1997년 로스차일드인베스트먼트에서 3년간 사모펀드를 운용한 그는 2000년대 들어 철강·석탄·통신·섬유 등 산업분야에서 파산한 기업들에 투자해 회생시키면서 투자자로 새롭게 명성과 부를 얻었다.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은 인터내셔널스틸그룹(ISG)의 설립과 매각이다. 그는 파산 위기에 처한 철강기업들의 자산을 인수해 ISG를 설립했고, 2005년 미탈스틸그룹에 매각했다. 로스는 이 과정에서 투자 원금의 13배가 넘는 성과를 냈다.
투자자들의 열광적인 반응 속에서 로스는 2006년 자신의 WL로스를 인베스코에 팔았다. 매각 전 이루어진 배당에서 투자자들은 투자 원금의 2~3배씩을 거머쥘 수 있었고, 로스의 이름 덕에 2007년 WL로스는 40억 달러의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2005년 11억5000만달러에 비해 3배가 넘는 규모로 커진 것이다.
로스 회장은 WSJ와의 인터뷰에서 “당장은 물러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주말마다 테니스를 4세트씩 칠 정도로 여전히 건강하다”면서 “회사와 5년을 추가로 계약했으며 5년 뒤에는 1년씩 연장하기로 했고, 이는 회사나 나 어느 한쪽이 계약을 연장할 의사가 없을 때까지 계속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KKR이나 블랙스톤 등 다른 사모펀드는 이미 설립자의 후계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두 펀드의 경우 설립자의 나이가 60이 넘었고 경영진이 나서 후임 인선 문제를 처리하고 있다. 블랙스톤의 경우 스티븐 슈워츠먼 설립자를 대신할 후임으로 토니 제임스 대표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WL로스의 경우 뚜렷한 후임자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로스 회장은 자신을 중심으로 1990년대 로스차일드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선임자들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서한을 통해 “나를 비롯한 임원진이 같이 투자 전략을 결정하고 있으며 나의 업무는 이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식 기자 gr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