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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월스트리트와 여의도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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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월스트리트와 여의도의 가을 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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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행장님! '월가를 점령하자'는 함성이 그칠 줄 모릅니다. 히피들의 장난으로 치부됐던 시위대의 분노는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발단은 월가로 대표되는 금융권의 탐욕입니다. 월가 금융회사들은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70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지요. 직원들은 여전히 거액의 봉급을 받으면서 추가 지원을 요청했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는 점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99%'라는 구호가 상징하듯 시위는 1%의 부패탐욕 계층을 겨냥한 사회운동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미국 소식을 접하는 사람들 시선이 왜 서울 여의도와 명동 금융가로 쏠릴까요. 상황이 닮아 그럽니다. 한국 정부도 외환위기 당시 은행 87조원, 저축은행 17조원 등 총 168조원의 공적자금을 쏟아부었지요. 지금까지 회수한 게 102조원에 불과합니다. 막대한 국민 세금을 지원받아 살아난 은행들이 보인 행태는 어떤가요?

올해 사상 최대 수익을 낸다지요. 연간 순이익이 20조원으로 예상된다니 일단 축하합니다. 실력이 출중해 그런 성적을 낸다면 누가 뭐라겠어요. 그 수익이란 게 대부분 예금ㆍ대출 금리차 따먹기요, 온갖 수수료 챙기기 아닙니까. 고난도 금융기법보다 부동산 담보 잡고 돈 빌려주는 땅 짚고 헤엄치기로 장사하면서 이자는 왜 그리 셉니까. 기준금리가 내리면 대출금리는 그대로 두면서 예금금리는 많이 낮춥니다. 거꾸로 기준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는 크게 높이면서 예금금리는 질질 끌다 올리는 시늉만 냅니다. 그러면서 당국이 가계대출을 억제하라니까 아예 신규대출을 끊어버린 게 은행입니다.


은행의 장사밑천은 고객예금입니다. 정부가 사업면허를 내주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여러 도움을 줍니다. 따라서 이윤 추구에도 적정 예대마진 등 금도가 요구됩니다. 은행의 준(準)공적 기능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불황 속 가계부채에 헉헉대는 고객들을 몰라라 한 채 은행 임원들은 월가 금융인 못지않은 1억원 안팎 월급을 받습니다. 초임이 삼성전자를 능가하는 직원들도 보너스 잔치를 벌입니다.

욕심은 많은데 실력이 모자랍니다. 해외점포가 꽤 있지만 대부분 교포 상대 영업이죠. 외화조달 능력이 허약해 문제가 생기면 정부에 손을 벌립니다. 1997년 말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모두 정부가 외환보유액을 털어 은행 뒷돈 대주느라 바빴잖아요. 근무 자세는 어떤가요. 신뢰가 생명인 금융회사에서 직원들의 횡령과 투자사기가 빈발합니다. 지난해 드러난 금융사고만 179건, 피해금액은 2736억원입니다.


대선을 1년여 앞둔 미국에서 월가 시위는 태풍의 눈입니다. 오는 13일 미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현장을 목격하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시위 현장을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며 샴페인을 마신 월가 금융인들의 모습이 동영상으로 퍼지면서 시위대의 분노가 더했습니다. 국내에선 은행 노조가 내년에 8%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지요.


K행장님! '눈물의 비디오' 기억나십니까? 환란 직후 정리해고 칼바람이 몰아칠 때 한 은행원이 자신은 떠나지만 남은 동료들이 똘똘 뭉쳐 으뜸은행을 만들어 달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은행권에서 말썽 많은 저축은행 대표를 '은행장'으로 부르지 않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지요. 은행장과 격이 다르다며. 하지만 은행들이 '고객 무시' 행태를 계속하면 국민이 은행장들을 '은행 사장'으로 바꿔 부를 겁니다. 미국 시위대는 자본주의를 부정하지도, 월가가 사라지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외환위기 때 장롱에서 금반지를 들고 나온 우리 국민의 여의도를 향한 시선은 더 따뜻합니다. 이 좋은 계절 가을, 여의도와 명동에 촛불이 등장하기 전에 은행을 필두로 금융권 스스로 변하길 기대합니다.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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