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2012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는 특별하다. 신생구단 엔씨소프트의 합류로 9개 구단이 지명에 나선다. 지난해 78명보다 더 많은 호명이 예상된다. 8월 25일 신세계행 티켓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 스카우트들이 주시하는 그들을 미리 만나본다.
① 노성호, 아마추어 최고 구속을 자랑하는 왼손 투수
② 나성범, 메이저리그를 홀린 특급 왼손 투수
③ 김원중, 미래가 더 기대되는 오른손 투수
④ 이민호, ‘컨트롤 마법사’ 꿈꾸는 오른손 투수
⑤ 이현동, 아마추어 최고의 팔방미인
⑥ 한현희, ‘뱀 직구’ 뿌리는 사이드암 투수
⑦ 변진수, 황금사자기를 달군 사이드암 투수
⑧ 하주석, 韓·美 스카우트를 홀린 만능 유격수
⑨ 박가람, 청소년대표팀 안방 책임질 수비형 포수
생년월일 : 1994년 1월 15일
체격조건 : 176cm, 80kg / 우투우타
학력 : 백운초교, 휘문중, 휘문고
박가람(휘문고)은 5월 29일 목동야구장을 잊지 못한다. 광주일고와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16강전. 휘문고는 연장 접전 끝에 5-8로 졌다. 10회 무사 1, 2루의 위기를 넘기지 못했다. 상대에 안타, 4사구 4개, 송구 실책, 투수 폭투를 차례로 허용하며 대거 5점을 헌납했다. 휘문고는 이어진 공격에서 반격의 찬스를 잡았다. 타선이 응집력을 발휘, 2점을 따라붙었고 이내 2사 2, 3루의 기회를 맞았다.
박가람은 살얼음판 같은 타석에 조심스레 발을 내딛었다. 투수는 상대 에이스 이현동. 벼랑 끝에서 만난 큰 산이 적지 않은 부담이었던 것일까. 박가람의 방망이는 연신 허공을 갈랐다. 삼진 아웃.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고 광주일고 벤치는 8강 진출에 흥겨워했다. 광경을 바라보던 박가람은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3개월여 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나 때문에 진 것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리 힘이 풀려 일어나지도 못했고. 타석에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휘문고 이사장의 부축으로 박가람은 겨우 야구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학교로 돌아왔지만 아픔은 가시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더 시달렸다. 사실 뼈아픈 패배는 처음이 아니다. 1학년 때 나선 추계리그에서 9타수 무안타로 부진한 적이 있다. 참담한 성적에 그는 야구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 부진한 성적의 야구로 더는 부모님을 괴롭힐 수 없었다.”
하지만 고비는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아버지는 비장한 아들을 보자마자 활짝 웃었다. 이내 지긋한 목소리로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건 노력이 아니다. 진정 노력을 했느냐”라고 물었다. 아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 포수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로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박가람은 야구를 하며 후회한 적이 많았다. 그는 백운초 2학년 때 처음 야구공을 잡았다. 배트를 쥐고 싶은 마음 하나로 무작정 야구부를 찾아갔다. 부모님은 어려운 형편에 아들을 뒷받침해줄 자신이 없었다. 억지로 떼를 쓰는 박가람을 말리며 공부에 전념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아들의 고집은 또래 아이들 이상으로 질기고 길었다. 5학년이 되던 해 한 번 더 야구부를 찾아가 입단을 꾀했다. 부모님은 더 이상 꿈을 막을 수 없었다. 며칠을 고민한 뒤 “한 번 시작한 야구에서 끝장을 보거라”라며 박가람을 격려했다.
하지만 어렵게 선택한 야구인생은 가시밭길이었다. 남들만큼 장비를 갖출 수 없었고 회비 역시 밀릴 때가 다반사였다. 온갖 눈치를 보며 나선 그라운드. 그 괴로움 속에서 박가람은 몇 번의 좌절에도 흔들리지 않는 노하우를 터득했다. 광주일고와 뼈아픈 기억도 그렇게 또 하나의 보약이 됐다. 그는 바로 평소보다 개인훈련 시간을 1.5배 늘렸다. 한 구마다 집중을 다해 정성껏 배트를 휘둘렀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후반기 대회에서 홈런 두 방을 때리며 팀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최근 소집한 청소년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A구단 스카우트는 “체격에 비해 힘이 꽤 좋다”면서도 “선구안을 많이 가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B구단 스카우트도 “빠른 공 앞에서 자세가 너무 쉽게 무너진다”며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방망이를 휘둘러야 한다”고 꼬집었다. 날카로운 지적에 박가람은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며 “그래서 더더욱 프로무대에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절한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 결과는 오는 25일 밝혀진다.
다음은 박가람과 일문일답
스포츠투데이(이하 스투) 최근 청소년대표팀에 승선했는데.
박가람(이하 박) 휘문고 진학을 앞두고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2학년에 오르기 전 주전 자리를 꿰차는 것과 청소년대표팀 합류다. 바람을 모두 이루게 돼 기쁘다.
스투 어려운 환경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박 어머니가 하숙집을 알선하는 일을 하신다. 아버지는 일반 회사에 다니시고.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 (잠시 말을 멈춘 뒤)솔직히 대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 신인 드래프트 결과에 관계없이 무조건 프로무대에 뛰어들 생각이다. 지명을 받지 못한다면 신고 선수도 불사할 것이다.
스투 아마추어에서 야구를 하려면 꽤 많은 돈이 필요하다. 어떻게 지금까지 야구부 생활을 할 수 있었나.
박 주위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특히 전형도 전 휘문고 감독님이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배트, 글러브 등 장비는 대부분 친한 선배들의 것을 물려받았다. 그걸 받으려고 얼마나 많은 아부를 떨었는지 모른다(웃음). 그렇게 야구를 하다 보니 독기가 생겼다. 프로에서 성공해야한다는 생각을 휘문중 재학 때부터 굳게 다졌던 것 같다.
스투 야구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궁금하다.
박 김병현(라쿠텐)과 같은 멋진 언더핸드스로 투수가 되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스투 지금 소화하는 보직은 포수인데.
박 야구를 하다 보니 마운드보다 방망이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사실 투수로 섰을 때 제구가 많이 불안하기도 했다(웃음). 포수 마스크를 쓴 건 정재권 백운초 감독의 권유 때문이었다. 내 체격에 가장 잘 맞는 옷이라며 마스크를 건네준 게 계기가 돼 지금에 이르렀다.
스투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박 투수를 편안하게 해주는 리드능력이다. 일부러 투수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1년 선배인 임찬규(LG)와 지금도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스투 투수 리드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있다면.
박 편안하게 던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배짱이 좋은 투수들과 호흡을 맞출 때면 그들의 생각을 볼 배합에 많이 반영하는 편이다. 내 마음대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투수를 믿어야만 팀이 승리할 수 있다고 본다.
스투 투수의 판단이 잘못됐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박 한참 지난 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투수는 스스로 느껴야만 성장할 수 있다. 경기 도중 아쉬움을 전한다면 그것은 투수, 경기에 모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경기는 질 수도 있다. 어차피 아마추어는 배우는 세계이니까. 하지만 경기를 통해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을 것이다.
스투 포수 능력 가운데 가장 자신 있는 점이 있다면.
박 블로킹이다. 공을 몸에 맞으면 많이 아프다. 하지만 나는 몸을 사리지 않는다. 몸을 혹사시켜야만 뿌듯함을 느낀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미련한 곰’이다. 이전에는 훈련에서도 온몸을 던졌다. 최근 습관은 많이 버렸다. 실전에서만 전력을 발휘한다.
스투 어느 정도로 몸을 던지 길래.
박 덕수고와 경기에서 20차례 이상 블로킹에 성공했는데 심판이 “너희 팀 투수들이 너 잡겠다”라고 하더라. 솔직히 투수들이 맘껏 공을 던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더 몸을 던질 수 있다. 프로에 진출해도 블로킹만큼은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스투 몸 관리는 어떻게 하나.
박 4kg짜리 아령을 1천 번 이상 들어올린다. TV를 보며 쉴 때도 손목 힘을 기르는데 주력한다.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신경을 많이 기울인다. 벤치프레스를 올해 120kg에서 150kg으로 30kg가량 무게를 올렸다. 상체운동은 거의 최고치를 모두 소화하게 된 것 같다.
스투 후반기 2개의 홈런을 때린 비결도 그 덕인가.
박 그렇다. 손목 힘이 꽤 강해졌다는 걸 실감한다. 지난해만 해도 힘으로만 배트를 휘두르기 바빴다. 올해는 다르다. 손목 힘 때문인지 스윙이 많이 편해졌다.
스투 받아친 공은 각각 무엇이었나.
박 모두 직구였다. 성남고와 지역예선에서 커브를 받아쳐 펜스 바로 앞까지 보낸 적이 있는데 조금 더 힘을 가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스투 팀에서 4번은 언제부터 맡았나.
박 올해부터다. 처음에는 부담이 많이 됐다. 계속 장타를 때려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스투 롤 모델이 누구인가.
박 강민호(롯데)다. 파이팅 넘치고 장타를 날리는 모습에 반했다. 노력하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만 해도 도루 저지가 좋지 않았는데 올해 손을 뒤로 빼는 동작이 무척 빨라졌다. 불가능을 넘을 수 있는 건 역시 땀밖에 없는 것 같다. 꼭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스투 고교야구에서 라이벌로 생각하는 포수가 있다면.
박 야탑고에 재학 중인 김성민이다. 선천적으로 좋은 몸을 타고났다. 그게 부럽다. 그렇게 되려고 토할 만큼 음식을 섭취한 적도 있는데 체질상 잘 안되더라.
스투 프로지명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박 휘문고에 입학해 가장 먼저 한 것이 계산이었다. 프로 지명 날까지의 남은 날짜를 알아봤다. 당시 남은 일수가 780여일이었는데 그 숫자가 어느덧 10 밑으로 떨어졌다. 불안하지만 기대도 되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남들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스투 프로무대를 밟는다면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박 백운초 2학년 때 두산에서 뛰던 홍성흔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정수근과 함께 아버지의 지인이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를 찾았는데 그때 내게 해 준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스투 무슨 말을 남겼나.
박 내가 야구를 한다는 말을 듣고 “경희대 재학 시절 친구들이 술 마시고 여자를 만날 때 끝까지 혼자 남아 연습을 했다”며 “남들과 똑같이 하면 똑같은 선수밖에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간 홍성흔 선배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며 열심히 노력했다. 꼭 프로무대에 진출해 좋은 결실을 맺고 싶다.
스포츠투데이 이종길 기자 leemean@
스포츠투데이 사진 정재훈 사진기자 roz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