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천국인 미국에는 동성애자들을 위한 그들만의 리그도 존재한다. 아직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각종 구기 종목의 12개 리그가 운영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리그는 소프트볼이다. 1977년 창설되었으며 남성 동성애자와 여성 동성애자간의 대결로 나눠지고 등급도 A에서 D까지 분리된 리그만도 37개에 이르고 팀도 680개나 된다. 캐나다까지 합치면 56개 리그로 늘어날 정도로 규모는 방대해진다. 뿐만 아니라 가을엔 메이저리그처럼 '동성애 소프트볼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등 대중적인 인기도 모으고 있다.
동성애 소프트볼 리그는 원칙적으로 동성애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 이성을 좋아하거나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이끌리는 이들이 뭉친 팀은 참가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남성 동성애자의 '게이' 리그에선 팀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팀에 합류할 경우에는 참여가 가능하다. 단, 팀 당 2명을 초과해선 안된다. 일반 프로 리그나 다른 아마추어리그처럼 차별을 두지 않지만 이성애자나 양성애자들을 무턱대고 받아들일 경우 리그 본연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어 제한을 두고 있다.
문제는 게이냐 이성애자냐 또는 양성애자냐를 정확히 구분할 수 있느냐는 것. 양심에만 의지해야 하는 민감한 부분이라 종종 마찰을 빚거나 대립관계를 빚는다.
가장 크게 문제가 된 건 2008년 시애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D2라는 팀의 선수 3명이 게이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2위 자격(당시 D2의 패배)을 박탈당한 사건이다. 당시 리그 위원회로부터 부름을 받은 용의자(?) 5명의 선수 가운데 3명은 각각 노코멘트, 게이이면서 이성애자, 그리고 양성자라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혀 리그에서 뛸 자격을 잃었다.
사건 뒤 당사자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월드시리즈 준우승 자격을 인정하고 부당한 심문을 받은 이유로 각각 7만5000달러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하지만 판결은 원고들이 리그 운영 규칙을 교묘하게 어기고 모호하게 자기 정체성을 밝혔다는 리그의 주장에 더 기울어졌다.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6월 시애틀 지방법원의 항고심까지 발전하게 됐다. 여기서도 판결은 뒤집어지지 않은 채 리그의 승리로 끝났다. 2000년 연방대법원에서 내려진 게이들의 보이스카우트 가입 금지 판례를 근거로 동성애자 리그의 이성애자 선수 숫자 제한은 정당하다며 리그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원고측이 제기한 심문과정에서의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았다는 부분에 대해선 오는 8월 2일 선고하기로 했다.
이번 일로 계기로 소프트볼과 동성애자 리그의 양대산맥인 '플랙 풋볼(Flag Football,태클이 아닌 상대가 걸치고 있는 샅바를 걷어내는 방식의 풋볼로 일반 풋볼에 비해 과격하지 않다. 플랙 풋볼은 이성애자 비율을 팀 당 전체 로스터의 2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은 이성애자 제한 룰에 대해 문제가 있는 지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 8월2일 재판에서 차별 대우가 인정될 경우 미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차별'이 점차 활동폭을 넓히고 있는 동성애자 집단에 누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리그는 수 많은 일반적인 스포츠 리그를 마다하고 자신들만의 리그에 뛰려는 이성애자들이 야속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대우로 지금까지 싸워왔던 터에 자신들 스스로가 일반인을 차별한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까봐 속 시원히 속내를 터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쯤 축제가 되어야 할 월드시리즈 준비를 앞두고 마음이 들떠야 하는데 결코 편치 않은 그들이다.
이종률 전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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