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효진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고까지 한 전면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이틀 앞으로 다가오면서 서울 민심의 분열상이 극명해지고 있다. 무상급식이라는 쟁점 앞에 서울이 둘로 쪼개지는 모양새다.
주민투표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간의 기싸움은 '가두 캠페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오 시장의 기자회견 뒤 첫 출근일인 22일 오전 출근길 곳곳에 걸린 현수막이 이런 분위기를 전해준다. 이날 서울 중구와 강남구 등 직장인들의 발길이 잦은 거리 곳곳에는 '투표하시면 매년 3조원이 절약된다' '망국적 복지포퓰리즘, 24일에 처단하자'는 등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과 '부자아이 가난한아이 편 가르는 나쁜투표 거부하자' '주민투표에 예산낭비 말고 수해복구에 전념하자'는 등의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나란히 자리해 각각 투표 성사와 저지를 유도하고 있다.
이런 양상은 온라인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 시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33.3%를 못 넘어 투표가 무산되거나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하면 시장직을 걸고 모두 책임지겠다"고 밝힌 21일, 한 네티즌은 인터넷 포털 뉴스게시판에 "서울시 예산의 0.3%에 목숨을 걸었는가. 물난리로 죽은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무릎꿇고 눈물을 흘렸는가"라는 글을 올려 오 시장과 서울시의 입장을 비판했다.
또다른 네티즌은 "국가의 의지에 따라 의무교육을 받는 초등학생들의 점심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당위적인 일 앞에서 대한민국 수도의 행정수장이 본인의 정치적 진로 때문에 이런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이 참담하다"면서 "오 시장의 입장표명은 그 자체가 그간 보여줬던 전시행정의 연장"이라고 꼬집었다.
반대로, 오 시장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울시교육청의 무상급식안이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전제 아래 오 시장의 발표를 역사적인 결단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한 네티즌은 "우리나라가 초등학생 전체의 점심을 책임질 정도로 능력을 갖췄는지에 관한 논의가 불충분했던 것 자체가 문제"라면서 "오 시장의 발표를 정치쇼로 폄하해선 안 된다"고 적었다.
오 시장 발표에 대한 입장 뿐 아니라 투표 자체에 대한 전망 역시 엇갈리고 있다. 서울시의 '단계적 무상급식안'을 지지하는 '복지포퓰리즘 추방 국민운동본부'의 관계자는 "현재 투표현장 분위기가 생각보다 좋아 투표율이 33.3%를 넘어 40% 이상을 달성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며 초등학생 자녀를 둔 직장인 김모(43ㆍ남)씨는 "오 시장이 시장직을 걸겠다고 하면서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느끼게 됐고 주민투표에 참여하기로 했다"면서 "지역민들 상당수가 저처럼 생각하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주민투표 불참을 주장하는 '나쁜투표 거부 시민운동본부(이하 시민운동본부)'는 서울시가 유효 투표율인 33.3%를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시민운동본부 관계자는 "사실 현재 투표 내용을 모르는 시민들이 많고 경제난에 수해까지 겹쳐 시민들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면서 "이런 마당에 굳이 주민투표까지 해야 하느냐는 식의 냉소적인 분위기가 시민들 사이에 넓게 퍼져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지방선거 때와 달리 학교나 교회 등 시민들의 접근성이 높은 장소에 투표소가 거의 마련되지 않은 점, 투표일이 휴일이 아닌 점 등도 투표율을 갉아먹는 요인이 될 것이란 게 시민운동본부를 포함한 '주민투표 반대론자'들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 서울시 선관위는 서울 시민들의 투표권을 보장하는 차원에서 서울시에 주소를 둔 수도권 근무자들을 위해 투표 내용을 안내해줄 것을 인천시 및 경기도 선관위에 요청해둔 상태다.
오 시장의 '시장직 발언'이 지난 지방선거 때 그를 구해준 강남 표심의 집결을 유도할 것이란 일각의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난 지방선거 때 강남 유권자들이 오 시장에게 몰표를 던진 것은 오 시장이 아닌 한나라당을 바라보고 투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한나라당의 의견까지 묵살한 오 시장이 전통적 지지세력인 강남 유권자들을 끌어모으기가 쉽진 않을 것이며, 오히려 반발만 살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오 시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전망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주민투표를 시장 신임투표로 변질시켰다"는 말로 오 시장의 전날 발표를 비판했다. 곽 교육감은 "아이들 차별급식하자고 시장직을 건 것인데, 그가 큰 정치인이라면 교육복지를 확대하는 데 자리를 걸고 무릎을 꿇었어야 했다"며 "의도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김효진 기자 hjn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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