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스 메르켈에 유로본드 채택 촉구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 유럽 4개국이 공매도를 금지해 시장의 급한 불을 끈데 이어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6일 정상회담을 갖고, 유럽 재정위기 해소방안을 논의한다. 정상회담에서 이들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충과 ‘유로 본드’ 발행 두 가지를 집중논의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FSF는 현재 4400억 유로(한화 약 660조원)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구제금융을 제공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게 중론이다. 유로 본드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속한 국가가 재정위기를 맞았을 때 유로존 이름으로 발행해서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채권인데 독일이 반대하고 있어 논의가 진전을 보지못하고 있다.
그러나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을 비롯해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결국 ‘유로채권’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주가 폭락한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보다는 유럽 최강대국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신속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럽중앙은행(ECB) 채권매입 불가피=유럽연합 중앙은행인 ECB는 유럽의 금융안정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다.
ECB는 지난해 5월부터 채권매입을 해왔다.현재 대차대조표상 740억 유로(미화 1050억 달러)어치의 그리스와 아일랜드,포르투갈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ECB는 지난 8일부터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를 사들이면서 ‘루비콘’강도 건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전 고문이자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인 옌스 바이트만 등 23명의 집행위 위원중 4명이 이 결정에 반대했고 찬성한 위원들도 ‘무한정’ 사들일 의도였는지는 의심스럽다.
지난 5개월 동안 유로존 국채시장에 개입하지 않던 ECB가 국채 매입을 시작한 것은 이탈리아 등의 긴축조치와 성장을 높이기 위한 개혁조치에 대한 약속때문이었다.
‘개혁이 없으면 채권매입도 없다’는 ECB의 메시지는 ECB와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지원시 적용한 원칙과 일치한다.
ECB의 다른 걱정거리는 6월 말 현재 유로존 은행에 대한 대출금 규모가 4180억 유로에 이른다는 점이다.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은행이 대출금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문제는 이 대출금의 상당부분이 의심스런 담보를 받고 해준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ECB의 증자가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유럽 각국 정부에 손을 벌려야 하는데 이는 ECB의 독립성을 크게 훼손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걱정거리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를 사들이기 시작하면서 ECB가 계속 채권을 매입하지 않으면 ‘투자자’ 열의가 식어버릴 것이라는 점이다.
ECB는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채권매입 위험을 떠넘기고 싶어지만 9월 중 EFSF가 출범할 때까지는 앞으로 수 백억 유로의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를 매입해야만 한다. 이는 곧 증자가 점점 더 불가피해지며 아울러 ECB독립성 논란도 점점 더 커질 것이라는 뜻이다.
◆EFSF 최소 1.5조 유로 갖춰야=유로존 정부들은 지난 달 21일 EFSF가 유통시장에서 유럽 국가들의 국채를 할인가격에 사들이게 하고, 은행의 증자에 참여하며, 채권시장에서 압력을 받고 있는 국가에 대한 긴급신용한도를 제공하게 하도록 합의했다.
EFSF가 이같은 합의내용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EFSF의 자본 확충과 역할 확대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독일과 북유럽의 ‘매파’ 국가인 핀란드와 네덜란드가 여전히 거부하고 있다.
EFSF의 실제로 가능한 대출능력은 8월13일 현재 2550억 유로 수준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했다. 유럽 각국의 의회가 7월21일 합의안을 승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슬로바키아 같은 일부 국가의 반발을 감안하면 EFSF 자본확충은 10월게 4400 억 유로로 늘어날 것으로 FT는 내다봤다.
유로존 정책 당국은 이 정도의 금액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구제금융을 제공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한다고 FT는 덧붙였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이탈리아와 스페인 국채 수익률의 상향 압력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두 나라 국채 수익률 상승 압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EFSF가 최소한 1조5000억 유로의 화력을 갖춰야 한다고 경제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문제는 EFSF는 유로존 국가에 대출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자체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 민간회사라는 점이다.
만약 EFSF가 가장 낮은 금리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발행하는 채권이 트리플A 신용등급이 필요하다. 이는 유로존 핵심 국가들 특히 트리플A 등급을 가진 독일과 프랑스가 그 등급을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EFSF가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대출능력이 확대된다면 ,프랑스가 져야 할 총우발채무부담은 국내총생산(GDP)의 12.7%인 2450억 유로에 이르고 이는 미국처럼 프랑스가 트리플A 등급을 잃을 수 있는 요인이 된다고 FT는 지적했다.
EFSF의 최후의 자금보루인 독일에 대한 압력도 따라서 커질 것이며 이는 독일 정치인들과 유권자들의 분노를 초래할 것이다.
그러나 EFSF는 2013년 7월 항구적인 유럽안정메커니즘(ESM)으로 대체된다. 현재 구상으로는 ESM의 자본금은 7000억 유로로 이 가운데 800억 유로는 납입자본금이 나머지 6200억 유로는 최고자본(callable capital)과 보증이다. 총 대출능력은 5000억 유로다.
◆‘유로본드’ 감로수일까 독약될까?=FT는 정치인들은 현재 시장에 가장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유로존 도입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전했다.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를 주재하는 장 클로드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와 줄리오 트레몬티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지난해 12월 EFSF를 대체하고 e-본드를 발행할 유럽채권청(EBA)를 설립할 것으로 제안했다.
엄격한 재정건전성을 지켜온 독일과 다른 국가들은 e-본드를 ‘달콤한 독약’이거나 ‘치명적인 유혹’이라며 반대했다.
독일 연정의 파트너인 기민당내 정치인들은 “e-본드는 재정규율이 형편없는 국가들이 독일의 우월한 신용등급에 편승하게 하고 독일의 국채 수익률을 올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시절은 변하게 마련. 독일은 여전히 반대를 누그러뜨리지는 않고 있지만,사회민주당과 녹색당 등 야당권에서도 e-본드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ECB와 EFSF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를 다량으로 사들이고, 유로존 정부들이 ECB의 자본금을 대폭 증자하면 이는 어떤 경우에든 독일과 그 동맹국에서 다른 국가로 자본이 이전되는 것과 같다.
FT는 “독일은 유로존본드를 국채시장을 안정시키는 더 바람직한 방안으로 여길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금리에 대한 독일의 염려는 이미 해결방안이 제시됐다. 자크델파와 제이콥 폰 바이츠잭커라는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해 5월 브뤼셀의 싱크 탱크인 브루에겔연구소에 제출한 논문에서 ‘블루본드’와 ‘레드본드’ 도입을 제안했다.
블루본드는 유로존 정부가 공동으로 보증하고GDP의 60%까지만 커버한다. 이 채권은 초우량 블루칩 채권으로 투자포트폴리오에서도 편입된다.
만약 한 국가가 60% 한도 이상으로 채권을 발행한다면 이 채권은 ‘레드’채로 분류돼 해당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다른 유로존 국가는 보증하지 않는다. 레드본드는 당연히 고금리가 붙는다. 이론상 이 방안은 각국이 부채를 60%이하로 유지할 강한 인센티브가 제공될 것이라고 FT는 덧붙였다.
◆소로스,“메르켈 결단내라” 촉구=퀀텀 펀드 회장인 조지 소로스는 12일 로이터통신 기고문에서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만큼 독일이 유로를 지키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로스는 “AAA 등급을 가진 독일과 다른 유로존 회원국들은 자기들 신용으로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저리로 채권 차환을 허용할지를 결정해야 한다”면서 “대신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가차없이 구제계획을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로스는 특히 “독일과 다른 AAA 등급 국가들은 어떤 형태이든 유로본드에 동의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유로는 무너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같은 소규모 국가가 무질서한 디폴트든 유로존 탈퇴를 하면 이는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를 촉발할 것이라고 이유를 제시했다. 그는 “공통의 화폐를 갖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이미 유로는 존재하고 그것의 붕괴는 금융시스템에 계산할 수 없는 손실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로스 이런 이유에서 “독일이 직면한 선택은 자명하며 선택을 미루면 미룰수록 비용이 늘어난다”고 덧붙였다.
소로스는 현재의 유로 위기는 2008년9월 리먼브러더스 디폴트 이후, 추가 디폴트를 막기위한 보증은 유럽연합이 아니라 각국 정부가 해야 한다는 메르켈 총리의 결정에 그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리스 사태를 악화시키고 그것을 유럽의 실존적인 위기로 전염시키도록 한 것도 독일이 꾸물거린 탓이라고 비난했다.
소로스 회장은 “독일만이 유럽의 붕괴를 역전시킬 수 있으며, 이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메르켈 총리는 위기시, 조금씩 조금씩 정치적 저항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EFSF를 빨리 키우라면서 EFSF확대 조치가 이뤄질 때 프랑스 신용등급이 위험에 처할 수 있으며, 독일이 유로본드 방안에 동의할 때쯤이면 독일의 신용등급도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며 신속한 대응을 거듭 촉구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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