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1949년 마오쩌둥이 중국 통일의 대업을 달성한 데는 2인자 저우언라이의 공이 컸다. 저우언라이는 당내 서열이 자신보다 낮은 마오쩌둥의 역량을 알아보고 그를 1인자로 추대하면서 스스로 한발 물러났다.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마오쩌둥이 없었다면 중국 혁명은 불붙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저우언라이가 없었다면 그 불길은 다 타서 재가 됐을 것"이라며 저우언라이의 됨됨이를 높이 평가했다.
뜬금없이 중국 역사를 들춰내는 것은 최근 재계를 들쑤시고 있는 '2인자 논란' 때문이다. 바로 정병철 전국경제인연합회 상근부회장이다. 상근부회장은 회장을 보필해 사무국의 안살림을 챙기는 중책이다. 스스로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한발 뒤로 물러나 회장의 철학을 실천하고 조직을 추스리는 역할인 것이다.
그런데도 정 부회장이 지나치게 튀면서 '회장보다 높은 부회장' '전경련은 부회장 사조직'이라는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재계는 특히 정 부회장의 '과욕'을 꼬집는다. 지난해 광고주협회장에 이어 올해는 한국경제연구원장 대표 부회장직을 쟁탈했다.
올초에는 허창수 회장 취임(2월) 직전 조직개편을 단행하면서 자신의 심복들을 대거 승진시켰다. 재계 관계자는 "신임 회장이 취임하기 전 부회장이 인사를 단행한 것은 신임 회장에 대한 큰 결례"라며 "2인자가 1인자처럼 행동한다"고 질타했다.
설화(舌禍)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7월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시간을 두고 (차기 전경련 회장직 수행 여부를) 검토해보겠다고 언급했다"고 밝혔지만 사실 이 회장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 부회장이 거짓말을 한 셈이다. 전경련 역할론과 관련해 언론과 마찰을 빚을 때는 "기자들 출입을 정지시키고 싶다"는 상식밖의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정병철 논란이 확산되면서 전경련 내부 분위기는 쑥대밭이다. 임직원들에게는 기자들과 통화하지 말라는 단속령까지 내려졌다. 내부 관계자는 "정병철의 '정'자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사내 회식도 사라진지 오래다.
올해 전경련은 출범 50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자축할 여유가 없다. 기업자재구매대행(MRO), 초과이익공유제 등 각종 현안이 재계를 옥죄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를 대변해야 할 전경련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시점에서 '2인자 논란'은 뼈아픈 악재다. 이런 마당에 허창수 회장이 미래 비전을 아무리 역설한들 '허공의 메아리'일 뿐이다.
꼬인 매듭은 풀어야 한다. 시간이 해결하거나 잘라내거나. 정 부회장 연임 여부는 내년 초 총회에서 결정된다. 그 전까지는 정 부회장의 결단에 달려 있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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