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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교직주(敎·職·住)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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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찬 칼럼]교직주(敎·職·住) 때문이야 양재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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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어려움 하면 흔히 의식주(衣食住)를 꼽았다. 먹고살 만해지면서 걱정거리도 달라졌다. 입고 먹는 것보다 심각하게 다가선 것이 교육과 일자리 문제다. 그리 많은 신도시를 건설하고 아파트를 지었는데도 주거 문제는 여전히 우리를 숨 막히게 한다. 새로운 민생고, '교직주(敎職住)'가 문제다.


'등록금 1000만원=2314시간49분(289일2시간49분), 빅맥 세트 5200원=1시간12분'

이게 무슨 계산법인가. 한 푼이라도 벌어 등록금 내는 데 보태려 방학 중에도 땀흘리며 알바를 뛰는 대학생들의 절박한 삶의 산수다. 해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면서 야단법석이지만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 4320원으론 햄버거 하나 사먹지 못한다. 하물며 등록금이야. 최저임금을 받으며 하루 8시간 일할 때 289일, 9달 하고도 19일을 더 일해야 한다.


어떻게든 대학만 졸업하면 술술 풀린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당장 졸업자보다 졸업예정자가 취업에 유리하다며 휴학을 거듭하는 졸업유예족이 수두룩하다. 대학졸업장과 함께 백수로 전락하는 젊은이는 더 많다. 지난달 공식 청년실업자는 32만명. 하지만 취업준비생과 구직단념자, 그냥 쉰다는 경우는 통계 조사 시점에 구직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실업자로 잡히지도 않는다. 이들 실망 실업자군을 합친 사실상의 청년실업자는 120만명을 넘어선다. 오죽하면 이력서만 여기저기 낼 뿐 취직을 못 하는 자식 대신 손자 재롱을 보아야 할 '5학년1~9반(50대)' 엄마들이 생업전선에 뛰어들까.

취직만 하면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고? 낙타가 바늘구멍 뚫듯 잡은 직장도 3분의 1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이다. 봉급은 정규직의 57%선에 머물고 4대 보험도 제대로 안 된다. 소개팅에 나가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부터 물어볼 정도다. 그래도 학자금대출은 꼬박꼬박 갚아야 하고, 나이가 차니 주변에선 속도 모르고 왜 결혼 안 하느냐고 성화다.


어디 결혼을 사랑으로만 하나? 젊은 남녀가 함께 살려면 묵을 곳이 있어야 할 텐데 전세는커녕 월세 구하기도 어렵다. 자연히 결혼연령은 늦어지고, 그만큼 아이 낳을 기회도 줄어든다. 아직 결혼을 못 한 게 아니라 아예 결혼을 선택하지 않겠다는 비혼(非婚)족이 늘어난다. 미혼ㆍ독신ㆍ싱글 등으로 불리던 말이 어느새 '비혼'으로 대체되고 있다. 그 여파인가. 2005년 센서스까지만 해도 가장 대표적 형태였던 4인 가구가 지난해 조사에선 2인 가구와 1인 가구에 이어 3위로 처졌다.


연간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힘들게 대학을 나와도 취직이 어렵고, 그나마 잡은 직장이 월 88만원짜리 비정규직 신세인데다 자고 나면 치솟는 월세와 전셋값 등 이른바 '교직주 때문에'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연애와 결혼, 출산 등 가족 구성의 3단계를 포기한다고 해서 '삼포세대'다.


'시간은 흘러서, 나이는 먹어가고/무슨 낙이라도 있어야 하는데/결혼도 연애도 집도 차도 내 몫은 아닌 듯한 밤…대학 가면 빚더미, 난 평생 일개미/경쟁에 밀려, 시간에 치여/대학 가면 빚더미, 난 평생 일개미'(아카펠라그룹 원더풀의 노래 '삼포세대')


삼포세대의 출현은 사회의 안전판인 가족의 종말을 예고한다. 삼포세대가 더 이상 확산되기 전에 국민의 '교직주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게 정치가 할 일이다. 한창 꿈을 펼쳐야 할 청년을 포함한 이 땅의 민초들이 삼포세대 노래 대신 흥겹게 춤을 추며 '님과 함께'를 부를 날은 언제 올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멋쟁이 높은 빌딩 으스대지만/유행따라 사는 것도 제 멋이지만/반딧불 초가집도 님과 함께면/나는 좋아 나는 좋아…'






양재찬 논설실장 ja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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