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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축구세상]극적인 명승부, 여자축구에 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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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준희의 축구세상]극적인 명승부, 여자축구에 다 있었다 [사진=FIFA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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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난주 칼럼에서 코파 아메리카의 실리 축구 경향을 언급한 바 있다. 이 경향은 결승전을 앞둔 지금까지도 줄곧 이어졌다. 살얼음판 토너먼트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법칙’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각인시킨 코파 아메리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요즈음 벌어진 축구 경기들 가운데 손에 땀을 쥐는 흥미만점 명승부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적어도 네 경기가 그러한 승부로서 손색이 없었다. 물론 그 중 하나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코파 아메리카 준준결승이다. 그리고 이에 못지않은 세 차례의 드라마틱한 명승부는 모두 2011 FIFA 여자월드컵에서 터져 나왔다.

우선 독일과 일본의 준준결승. 홈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은 개최국 독일은 대회 3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우승후보 1순위였다. 월드컵 본선 15경기 연속무패(14승1무)를 달리고 있던 팀이었고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신체조건을 지닌 팀이기도 하다. 그러나 독일의 파워는 부지런히 움직이며 좋은 위치를 선점하는 일본의 조직을 무너뜨리는 데에 끝내 실패했고, 오히려 독일은 연장전 108분 사와 호마레의 ‘예의’ 공간 패스에 이은 마루야마 가리나의 골을 얻어맞으며 패퇴하고 만다. 아마도 이 순간은 여자축구 역사의 가장 대표적인 ‘거함의 탈락’ 장면으로 기록될 듯하다.


일본이 세계를 놀라게 한지 하루 만에 이를 능가할 만한 극적인 승부가 펼쳐졌다. 맞닥뜨릴 때마다 종종 명승부를 연출해온 미국과 브라질이 그 주인공들이다. 미국이 자책골로 앞서갔지만 브라질이 페널티킥(좀 더 정확하게는 다시 찬 페널티킥)으로 만회한 후 연장전에 돌입. 연장전 초반 ‘세계 최고의 선수’ 마르타의 감각적인 골(그 이전 상황에서 오프사이드성이 있기는 했다)이 터지면서 브라질의 승세가 굳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미국 또한 그들의 영웅 애비 웜바크를 보유하고 있었다. 경기 종료가 임박한 122분, 웜바크가 메건 라피노의 크로스를 완벽한 헤딩으로 연결시켰고 이는 여자월드컵의 역사에서 ‘가장 늦은 시간에 터진 골’이었다. 65분 레이첼 뷸러의 퇴장 이후 10명으로 싸워온 미국은 결국 승부차기에서 브라질을 꺾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눈물을 흘린 마르타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여자 메시’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미국와 일본이 맞붙은 결승전은 명승부 시리즈의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피날레였다. 우선 두 팀의 결승 진출부터가 얘기 거리를 낳았다. 사실 두 팀의 결승 격돌 확률은 대회 초반만 해도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었는데, 미국은 우승후보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지난해 골드컵에서 사상 처음 멕시코에 패하는 등 10여 년 전과 같은 난공불락의 팀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은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해 나아가며 ‘미아 햄 세대’와는 다소간 다른 유형의 짜릿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햄 세대의 막내 동생이었던 웜바크와 호프 솔로가 바야흐로 알렉스 모건과 같은 자신들의 막내와 더불어 새로운 전설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이었다.


물론 일본의 결승 진출은 그보다 더 놀라웠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독일을 물리친 일본은 준결승전에서 스웨덴을 상대로 확연한 우위를 드러내면서 다시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스웨덴에 대한 압도는 독일 전에서의 승리가 ‘한 차례 이변’이 아님을 입증한 것에 다름없었고 심지어 ‘바르셀로나 스타일’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신체 조건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통한 압박, 공간을 찾아들어가는 빠른 움직임과 정확한 패스의 반복이 마치 바르셀로나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던 까닭이다.


결승전은 미국의 주도로 시작됐다. 하지만 미국은 왕성하게 몰아치던 흐름에서 반드시 골을 넣었어야 했다. 미국보다 더 파워풀한 독일을 상대로도 잘 버텨낸 일본이 미국의 체력이 떨어지는 흐름을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까닭이다. 미국은 공격의 빈도에 비해 공격수들 간의 유기적인 호흡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데, 우승을 눈앞에 두고서 선수들 개개인의 힘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미국에겐 젊고 빠른 알렉스 모건의 임팩트가 있었다. 로렌 체니의 부상으로 평소보다 일찍 투입된 모건이 자신에게 주어진 찬스를 놓치지 않으면서 미국은 80분까지 1-0의 리드를 잡았다.


그러나 미국의 발목을 잡은 것은 그들의 수비였다. 공격에 비해 수비가 다소 불안해 보였던 미국의 아킬레스건이 말을 한 것이다. 일본이 수비 라인을 끌어올리며 조직적인 공격을 개시하자 미국의 수비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81분 수비진의 혼돈 속에 미야마 아야의 동점골이 터져 나왔다. 연장전 웜바크의 골로 다시금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도 미국의 수비에 2% 아쉬운 점이 발생한다. 종료를 몇 분 남기지 않은 시점, 일본의 코너킥 상황에서 사와 호마레의 빠른 움직임을 잡지 못한 것. 미국은 신체조건 작은 일본이 코너킥을 짧게 보내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어야 했다. 반면, 그것은 세계 여자축구 역사를 통틀어 손꼽힐만한 플레이메이커(헤게 리세, 베티나 비그만, 레나테 링고어, 솔베이그 굴브란슨 등과 더불어)인 사와가 다섯 번째 출전한 월드컵에서 그간의 노고를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승부차기는 미국에겐 악몽이었다. 선수들이 긴장하고 잘못 찬 탓도 있지만, 브라질 전에서 키커들의 스타일이 노출된 것 또한 미국에게 좋지 않게 작용했다는 생각이다. 그만큼 일본은 다방면으로 준비가 잘 되어 있었고 이 명승부를 끝내 승리로 이끌면서 월드컵을 들어 올렸다.

[한준희의 축구세상]극적인 명승부, 여자축구에 다 있었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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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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