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한시도 쉴 새 없이 지구촌을 달구고 있는 각종 축구대회들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다. 그 중에서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큰 팀’들이 ‘작은 팀’들에 쉽사리 승리를 거두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되며 적어도 지금까지는 예측 불허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우승후보 3강’으로 여겨졌던 아르헨티나(2무), 브라질(1무), 우루과이(1무)가 하나 같이 승리를 챙기는 데 실패했다.
개최국 아르헨티나에겐 세르히오 바티스타의 4-3-3 포메이션이 바르셀로나의 그것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무엇보다 아르헨티나에겐 바르셀로나와 같은 전체 선수들의 일사불란하고도 조직적인 움직임이 없다. 오히려 볼이 없을 때 가만히 서 있는 선수들, 볼을 지녔을 때 드리블 실력을 과시하고픈 선수들만 있을 뿐이다.
‘토털풋볼’의 결정체인 바르셀로나 축구는 조직적인 압박과 점유의 반복, 패스와 움직임의 끊임없는 연속으로써 이루어진다. 또한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전체 시스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데에 익숙하다. 리오넬 메시가 존재하고 포메이션을 똑같이 맞춰놓았다 해서 아무런 노력과 대가 없이 바르셀로나와 똑같은 축구가 구사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지금이라도 바티스타는 자신의 전술적 계획과 용병술을 검토, 수정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어야 하며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단결력, 정신력을 끌어올리는 일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어찌됐건 이제 아르헨티나에겐 홈 어드밴티지는 온데간데없이 엄청난 부담만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브라질은 적어도 협동의 차원에서는 아르헨티나에 비해 다소 앞서 있는 인상이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전에 있어서의 브라질의 문제는 브라질다운 파괴력이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 파투는 부드러운 터치를 골로 바꿔놓지 못했으며 네이마르는 경쾌한 발놀림을 간간이 과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호비뉴는 부진했고 플레이메이커 간수는 상대의 압박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교체 요원 프레드의 최근 경기력은 근본적으로 미덥지 않은 상태이며, 미드필드의 하미레스와 루카스 레이바 또한 공격에 거의 도움이 안 되었다.
근년의 대회들에서 브라질이 심지어 최선의 멤버를 가동하지 않고도 곧잘 우승컵을 들어 올리곤 했던 비결은 결정적인 상황에서의 파괴력이 다른 팀들보다 우세하게 나타났던 까닭이다. 하지만 마누 메네제스가 이끄는 현재의 브라질도 그리 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젊은 신예들의 경기력이 더 올라와야 하는 것은 물론, 메네제스의 용병술에도 약간의 변화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월드컵 4강’ 우루과이 또한 페루를 맞아 무승부로 만족해야 했다. 보유하고 있는 공격 자원들의 역량을 고려한다면 틀림없이 아쉬운 결과. 그래도 지난 시즌을 통째로 날려버렸던 니콜라스 로데이로의 경기 관여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증가했다는 사실 한 가지는 우루과이에겐 반가운 일이다. 팀 득점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에딘손 카바니의 활용 방식에도 다소간 고민이 필요할 우루과이다.
이렇게 우승후보 3강이 기대치에 미달하는 스타트를 끊고 있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약팀들의 분전은 괄목할 만하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를 상대했던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페루는 각각 실리적인 전술을 거의 완벽하게 구사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했다. 이 가운데에서도 압박으로부터 역습으로의 전환이 매우 유연하게 이뤄졌던 베네수엘라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함부르크 소속의 베네수엘라 미드필더 토마스 링콘, 페루 공격수 파올로 게레로는 1라운드 최고의 스타들이다.
어쩌면 이번 코파 아메리카의 초반은 외관상 더 호화로운 팀이라 할지라도 준비가 잘 된 약팀의 실리 축구를 깨뜨리기가 쉽지 않다는 현대 축구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팀과 약팀 간의 승부 격차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고, 몇몇 슈퍼스타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공격으로 쉽사리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이제 별로 없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아주대 겸임교수
스포츠투데이 조범자 기자 anju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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