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꼭 다섯 번을 물어보시는 고객님이 있었습니다.
"언니, 여기는 거리가 얼마예요?" "75m 보시면 될 것 같아요" "진짜 75m야?" "네, 맞아요, 고객님" "정말 맞아?" "네, 맞다니까요" "75m 확실하지?" "네" "그럼, 75m 보고 친다" "휴~" 이정도 물어 보시면 제 머리 위에는 벌써 연기가 모락모락 납니다. 다른 고객님께도 가봐야 하는데 다섯 번 대답할 때까지 도통 저를 놔주시질 않습니다.
몇 홀 지나니 진이 다 빠져 버렸어요. 제 목소리가 작아서도 아니고, 고객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제 제 인내심도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상냥하던 목소리가 조금씩 짜증이 묻어나고 인상도 점점 구겨지고 있었죠.
또 물어보십니다. "언니, 여기 100m 맞아?"라고요. 또 다섯 번을 물어 보실 거란 생각에 저도 모르게 그만 "맞아요! 맞고요! 맞다고요! 확실해요! 진짜 맞아요!!"라고 한꺼번에 다섯 번을 대답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피식 웃음이 나지만 그 상황은 민망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잘 넘어가서 다행이지만) 고객님께서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큰 실수인데 말이지요. 그렇게 다섯 번을 대답해 버린 후 잠시 시간이 멈추고 다시 고객님과 눈이 딱 마주치는 순간 서로 "하하하"하고 웃어버렸습니다.
왜 웃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가 나서 한 제 행동이 고객님께는 코믹했을까요? 저도 고객님의 웃음에 같이 웃음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시원하게 서로 웃은 후 아무렇지 않게 남은 홀들을 마쳤습니다. 여전히 다섯 번씩 물어보시는 고객님께 또 다섯 번씩 대답을 해드리면서요.
수많은 분들을 겪지만 아주 가끔씩 이렇게 평범하지 않은 고객님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은 힘들지만 지나고 나면 지금처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라운드가 되죠. 그날의 날씨까지 기억이 날 정도로요. 그리고 그런 라운드가 많을수록 제 몸에는 어떤 나쁜 균도 이겨낼 수 있는 초강력 면역력이 생겨납니다.
스카이72 캐디 goldhann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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