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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인생2막 50+]“난 반찬가게 셰프라예 아지매 내 손맛 어떤교”

시계아이콘읽는 시간3분 12초

건설 목수서 변신한 ‘정성과 손맛 반찬’ 사장 | 구흥대씨

편하게 자리 잡고 하는 인터뷰는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왜냐고?
밀려드는 손님들로 한산할 틈이 없었으니까.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던 목수가
50대에 반찬가게를 차려 성공했다.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을 텐데.
투박한 손맛에 두 번째 인생을 건 이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2평 남짓 비좁은 가게. 쉰두 살의 남자가 커다란 솥단지 앞에 처음 섰다. 국거리를 넣고 휘저으며 우려내길 반복한다. 맛이 성에 차지 않는지 자꾸 버리더라도 포기란 없다. 여러 가지 고명을 곁들여 통깨를 부리고 잡채도 버무려내 본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무심히 보기만 했던 음식 만드는 일. 정작 손에 양념을 묻히려니 불안했다. 맛이 있을까. 제대로 완성된 걸까. 의구심이 들수록 음식에 더욱 몰입했다. 2005년, 30년간 건설업계에서 활동하던 목수 구흥대(58)씨는 주 무대를 부엌으로 옮겼다. 훌쩍 6년이 지난 2011년 현재, 그는 음식 고수 ‘구흥대’가 됐다. 그리고 번듯한 반찬가게 ‘정성과 손맛 반찬’ 사장으로 당당히 서 있다.


[당당한 인생2막 50+]“난 반찬가게 셰프라예 아지매 내 손맛 어떤교”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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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양·가격 3박자, 하루 매출 200만원


하천을 따라 올라간 길모퉁이 ‘정성과 손맛 반찬’.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합포구 장군동의 명물이다. 상호를 잊었을 땐 “맛깔난 반찬을 싸게 살 수 있는 곳” 혹은 “그날 팔다 남은 반찬은 모두 기부하는 곳”을 물으면 누구나 장군시장 거리의 정성과 손맛 반찬으로 안내해 준다.


가게 앞 매대에는 갖가지 먹음직스런 찬들이 펼쳐져 있다. 가짓수만 해도 20여 가지가 넘는다. 김치는 기본이요, 멸치볶음, 고추장아찌, 도라지 오이생채, 연근 조림, 고구마줄기 무침 등 친숙한 것들이다.


그 중 삶은 강낭콩에 기자의 시선이 꽂힌다. 밥에 든 콩을 밑반찬 삼을 만큼 콩 사랑이 각별한 사람으로서 입맛을 다시고 있자니 그가 먹어보라며 몇 알을 건넨다. 다른 데와 달리 단맛이 강하지 않고 콩 특유의 고소함과 담백함이 살아 있다.


단독으로 먹어도 물리지 않을 듯하다. 이번엔 간장에 절인 고추장아찌. 맵지 않으면서 새콤한 게 잃었던 입맛까지 되살릴 모양새다. 살짝 도는 시장기에 밥 생각이 절로 난다. 여름엔 특히 식욕을 돋우는 양념깻잎과 물김치, 낙지젓갈이 잘 팔린다고.


한쪽에서는 국이 끓고 있었다. 판매하는 국 종류는 미역국, 장어국, 선지국, 쑥국 등 12가지. 요일마다 각기 다른 3개 메뉴를 내놓는데 이날은 시락국(시래기국)과 추어탕, 사골곰국이었다. 최고 인기 메뉴는 곰국. “사흘 동안 우려내기 때문에 진국입니다. 시간과 품도 가장 많이 들어가죠. 이렇게 해서 하루치를 팔아요. 일주일에 2~3번밖에 판매 못하지만 어설프게 단시간 고아내면 맛이 없거든요.”


맛도 훌륭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곳의 큰 장점은 푸짐한 양에 저렴한 가격이다. 200g 기준 2000~3000원선. 국 한 봉지는 3000~5000원으로 4인 가족이 한 끼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곰탕 값이 보통 1만~1만5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가격이다.


또 하나의 ‘비장의 무기’는 하회탈을 닮은 그의 푸근한 표정과 마음씨. 손님과 오랜 친구처럼, 가족처럼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 정겹다. 취재 중인 걸 눈치 챘을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기자에게 가게와 주인장에 대한 칭찬 한 마디씩 하고 자리를 뜬다


[당당한 인생2막 50+]“난 반찬가게 셰프라예 아지매 내 손맛 어떤교”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집 반찬 같은 느낌이랄까. 깔끔하고 다 맛있습니더…” “아저씨, 아주머니. 사람이 참 좋아서 하루도 안 빠지고 와예, 안 사도 와예~.” “마트하고는 비교가 안 되지요. 다른 곳에 비해 진짜 싸고 맛있어서 말이 필요 없습니더.”


이곳은 우연히 한 번 들렀다가 단골이 되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해외에 나가 있는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우리 집 반찬을 부쳐주려 먼 길 마다않고 오는 분들도 있어요. 너무 고맙죠.”


총각김치가 그새 동이 났는지 새로 담겨진다. 정성과 손맛 반찬은 하루 평균 200만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주위의 잘 나가는 반찬가게들도 근처에 얼씬 못하게 제압했다. 항상 북적이는 이 집 덕분에 슈퍼마켓, 채소 노점 등 주변 상권은 덩달아 살아났다.



최고 재료에 6년 전 가격 그대로


남녀노소·각양각색의 입맛을 고루 사로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반찬은 조리법과 재료 상태에 따라 천의 얼굴을 한다.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문전성시의 비결은 뭘까. 정성과 손맛 반찬을 키운 일등 공신 세 가지가 있다.


좋은 재료가 그 중 하나다. 구 사장은 싱싱하고 품질이 뛰어난 물건을 찾기 위해 새벽시장에서 발품 파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손님에게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국 끓이는 물도 아무거나 쓰지 않아요.


번거롭더라도 약숫물을 길러오죠. 3~4년된 통통한 최상품 미꾸라지에 알 굵은 홍합으로 낸 육수는 추어탕 맛을 기가 막히게 만들어 줍니다. 재료가 정직해야 음식이 맛있어요.” 특별한 비법은 없단다. 그저 재료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정성을 더할 뿐이다.


또 매일 아침 그날 판매할 반찬을 새로 만드는 노력과 부지런함이다. 어머니가 쓱쓱 바로 무쳐낸 듯 신선한 손맛은 일품이다. 화학조미료를 넣지 않고 자극적인 맛을 일체 배제했다.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간을 맞추는 이곳만의 비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가격 동결 정책까지. 모든 반찬과 국이 6년 전 가격 그대로다. 그렇다고 양을 줄인 것도 아닌데. ‘미친 물가’로 먹고 살기 팍팍한 요즘, 귀가 번쩍 뜨일 소리다. “다들 가격을 올렸는데 여긴 왜 안 올리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받을 때도 있다.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와 비교하면 지금 가격이 5배 정도 올랐어요. 그런데 양은 줄이고 가격을 높이면 손님들이 부담스러워 하잖아요. 서민을 위한 넉넉한 인심을 드리고 싶어요. 예나 지금이나 1만원으로 저희 집 반찬을 사가면 일주일이면 충분합니다.”


구 사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성과 손맛 반찬이란 가게 이름은 음식에 대한 그의 자신감과 자존심, 자랑스러움의 상징이었다.


[당당한 인생2막 50+]“난 반찬가게 셰프라예 아지매 내 손맛 어떤교”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새벽시장서 발품 가장 좋은 재료만 엄선
화학조미료 절대 안 쓰고 자극적인 맛 배제한 간
그리고 착한 가격 동결이 성공 비결이죠.



건강 허락할 때까지 하고 싶다


사실 그가 이렇게 반찬가게로 새로운 인생을 찾아 나설 수 있었던 건 아내 덕분이다. 실력이 좋은 그였지만 건설경기 불황이란 그림자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일감이 뚝 끊기자 2000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인력 사무소를 전전하며 단칸방에서 부부와 세 자녀가 부대끼며 어렵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거리를 지나다 한 반찬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 아내가 음식 솜씨 좋다는 말을 많이 듣곤 했죠. 저도 우리 아이들에게 찌개나 반찬을 곧잘 만들어 줬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죠. 더 나이 들기 전에 우리 솜씨 한 번 발휘해 보면 어떨까. 집에서 먹는 식으로 조그만 반찬가게를 차려보자고요.”


그는 어렵사리 마련한 보증금 500만원에 임대료 20만원, 기타 재료비까지 합쳐 1000만원의 적은 비용으로 2005년 8월 반찬가게를 열었다. 자금이 넉넉지 않아 권리금이 저렴한 곳으로 터를 정했다.


재래시장 내 몫 좋은 위치에 창업하려면 보통 5000만~8000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리를 잡기까지 1년도 채 안 걸렸어요. 계절을 타지 않아 비수기가 없기 때문에 매출이 일정한 편이거든요.


게다가 아내, 아들과 함께 운영하니까 인건비도 안 들고요.” 한 달 전부터는 ‘직원’이 하나 늘었다. 야무진 며느리를 맞아들인 것. 네 식구가 꾸려가면서 일이 더 즐겁고 가게도 탄탄해지는 느낌이란다.


오픈 초기에는 몫이 안 좋고 가게 운영도 미숙해 파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영업이 끝나기도 전에 반찬이 모자랄까 봐 걱정할 정도로 장사 잘 되는 가게가 됐다. 생계 문제로 아픔을 겪어봤기에 남는 반찬이 생기면 저소득층에 모두 기부한다.


매일같이 새벽 5시에 기상해 장을 보고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 반찬 만드는 일과가 고될 법도 한데 표정, 말투 하나에서도 그런 낌새를 찾을 수 없다. “주말도 없어요.


제대로 쉬는 날은 명절 때 뿐이죠. 왜 안 힘들겠어요. 잠도 부족하고 고단하답니다. 그렇지만 손님들에게 ‘맛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보람되고 힘이 불끈 솟아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열심히 해보렵니다.”


구 사장은 “앞으로 더 큰 점포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저렴한 값으로 반찬을 제공하고 싶다”고 밝혔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손님에게 들은 ‘최고의 찬사’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어머니가 해준 것보다 더 맛있다”는 말이었단다.


돌아가는 길에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반찬 한 가지를 만들어도 제대로 정성껏 만들어야 해요. 절대 대충은 안 통합니다.” 정성은 그가 고객에게 드리는 ‘최고의 사랑’이었다.


이코노믹 리뷰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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