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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K] 어느날, 축구장에 인디밴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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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K] 어느날, 축구장에 인디밴드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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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수원 삼성-대구FC의 K리그 14라운드가 열렸던 지난 18일 수원월드컵경기장. 경기 시작을 네 시간이나 앞두고 경기장에 도착했다. 교통 체증을 우려했던 이른 출발 탓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그라운드와 관중석이 정비될 시간. 서포터즈석 맨 앞줄에 낯선 무대와 각종 음향장비가 설치되어 있었고, 인디밴드 '넘버원코리안'이 리허설을 진행 중이었다. 강렬한 전자기타와 경쾌한 드럼 비트, 풍성한 금관악기의 음이 텅 빈 경기장 벽면을 타고 흘러와 심장박동수를 빠르게 했다.


며칠 전 수원 구단 측의 보도자료가 떠올랐다. 수원 서포터즈 '그랑블루'의 초청으로 인디밴드가 함께 응원전을 펼친다는 계획. 으레 지금까지의 축가 행사처럼 경기 시작전이나 하프타임을 활용한 공연으로만 예상했었다.

이번엔 달랐다. 아예 밴드가 관중석으로 들어와 90분 내내 응원에 동참한 것. 조금은 파격적인 선택이었다. 막대풍선조차 거부감을 갖던 축구장 아니었는가. 박수와 환호성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겨왔던 이 곳에 지나친 인위를 가하는 것 아닐까란 걱정도 앞섰다.


[스토리K] 어느날, 축구장에 인디밴드가 떴다


기우였다.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효과는 분명했다. 앞서 리그 7경기 동안 승리가 없던 팀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랑블루의 몸짓이 여느 때보다 더 신나게 느껴졌다. 흡사 락콘서트장에 온 사람들처럼 환호했다. '소수정예 일당백'으로 유명한 대구 서포터즈도 이날만큼은 밀렸다. 인디밴드만이 갖는 혈기 때문일까. 축구장만의 '원시성'을 해친다는 느낌도 없었다.


우려됐던 주객의 전도현상도 보이지 않았다. 응원을 이끄는 것은 여전히 그랑블루였다. '넘버원코리안'은 그 뒤를 에너지 넘치는 라이브 연주로 뒷받침해줄 뿐. 그럼에도 더욱 신나는 응원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일반석이나 기자석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이날 경기가 제공한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부부젤라가 선수의 집중력을 떨어뜨리려는 의도가 있다면, 이날 밴드와 서포터즈의 '협연'은 그 반대의 효과를 내기에 충분했다. 그라운드의 선수들도 경쾌한 합주를 선보였다. 염기훈의 왼발은 기타리스트의 손처럼 날카롭게 움직였고, 이용래의 활동량은 음(音)의 공백을 메우는 베이스기타의 인상을 남겼다. 곽희주의 탄탄한 수비 역시 묵묵히 뒤를 받치는 드럼을 보는 듯했다.


결국 이날 경기서 수원은 선제골을 내주고도 내리 네 골을 퍼부으며 4-1 대역전승을 거뒀다. 두 달여 만의 정규리그 승리.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은 수원 특유의 만세삼창으로 팬들에게 답례했다. 몇몇 선수는 밴드 쪽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우기도 했다. 경기 후 만났던 팬들도 "밴드와 함께하는 응원이라 훨씬 신났다"며 즐거워했다.


[스토리K] 어느날, 축구장에 인디밴드가 떴다


구단 측 역시 만족감을 표했다. 최원창 수원 홍보마케팅팀 과장은 "두 달간 못 이긴 팀이지만 축 처지지 말고 신나게 이겨보자는 그랑블루 측의 기획의도였다"며 이날 인디밴드 응원전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굉장히 실험적인 시도였는데 경기장 분위기도 좋고 팬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밴드와 함께 서포팅을 펼치는 것을 고려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랑블루 콘서트에 함께했던 노브레인, 슈퍼키드 등이 돌아가며 참가하는 방식도 구상 중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인디 음악인 특유의 결속력과 마니아 기질에도 주목했다. 최근 수원은 연예인 축구단 FC MEN의 정식 입단이란 파격적 행보를 보인 바 있다. 당시 많은 여고생이 빅버드에 몰려들며 '반짝 특수'를 누렸지만 사실 아이돌 가수 팬층을 축구장으로 흡수하는 일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반면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홍대 라이브 클럽과 축구장의 문화를 동시에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그는 "'넘버원코리안'만 하더라도 그랑블루 콘서트에 참가할 만큼 수원의 열성팬이다. 이번 그랑블루의 동참 제의에도 거의 자원봉사 개념으로 선뜻 나서줬다"며 "이들의 팬부터 소속레이블 직원들까지 원정 응원에 스스로 동참할 만큼 수원의 지지자가 됐다. 이는 노브레인을 통해서도 입증됐던 효과"라고 설명했다.


인디밴드와 함께하는 응원문화. 다른 종목에서는 찾기 힘든 축구장만의 즐길 거리, 볼거리로 발전할 가능성이 엿보였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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