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왜 제가 실수하면 꼭 골이 될까요.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홍정호(제주)가 제대로 된 신고식을 치렀다. 19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올림픽 2차 예선전. 그는 전반 종료 직전 결정적인 패스 미스를 저지르며 상대 선제골의 빌미를 제공했다.
홍명보호 수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그였다. 더군다나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을 대신해 주장 역할을 맡은 첫 예선전이었기에 실수는 더욱 뼈아팠다. 후반 연속골이 터지면서 3-1 역전승에 성공했지만, 경기 내내 동료들에 대한 부담감과 미안함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 자신을 부르는 취재진의 손길에 그는 무안함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주장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며 한숨을 쉬었다.
"내 실수만 없었다면 완벽한 결과였는데 아쉽다. 상대가 수비적으로 나오다 보니 안 그래도 힘든 경기였는데, 내 실수로 팀이 곤경에 처했다. 그래도 동료들에게 자극이 됐는지 열심히 뛰어줘 좋은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다"
선제골의 빌미를 제공하는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아, 또 실수했구나"였다. 대표팀 선수로서 저지른 세 번째 결정적 미스였다. 첫 번째는 U-20(20세 이하) 월드컵 가나와의 8강전, 두 번째는 이란과의 아시안게임 3위 결정전이었다.
그는 "'왜 내가 실수하면 골을 먹지'란 생각이 들었다"며 겸연쩍게 웃어보였다. 자괴감과 허탈함이 섞여있는 미소였다. 이어 자신의 안일한 태도가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전후반 각각 45분 동안, 특히 처음 5분과 끝나기 전 5분에 집중력을 잃지 말아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반전이 끝나고 그를 사로잡은 것은 자책감이었다. 동료들이 먼저 다가와 위로해줬지만 미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 순간 주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떠올렸다.
"내가 고개를 숙이면 선수단 분위기가 더 쳐질 수 있었다. 오히려 더 당당한 자세로 후반전에 임했다. 감독님께서도 두 골, 세 골을 먹어도 좋으니 전반 같은 경기만 하지 말자고 얘기해주셨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곧바로 상대의 '침대축구'가 이어졌다. 작은 충돌에도 요르단 선수들은 쓰러진 채 그라운드에 드러누워 시간을 보냈다. 홍정호는 당시를 떠올리며 "울고 싶었다"고 답답했던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도대체 왜 저럴까 싶었다"며 하지만 상대의 심리전에 말리지 않고 집중하려 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후반전 김태환-윤빛가람-김동섭의 연속골로 대표팀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주장으로서의 미안함과 책임감도 한결 가벼워졌다. 더불어 이번 실수를 '반면교사'로 삼아 남은 경기를 잘 치르겠다는 각오다.
그는 "원정 2차전이나 향후 아시아 예선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선제골을 내주지 않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뒤의 홀가분함과 결연한 의지가 동시에 느껴졌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