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지난 29일 열린 2011 K리그 12라운드는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기념비적인 경기였다. 창단 이래 단 한 번도 안방에서 이겨보지 못했던 수원 삼성을 맞아 2-1 역전승을 거뒀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은 환호하며 그라운드에 드러누웠다. 몇몇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다. 징크스 극복과 연승 행진 속에 14위였던 리그 순위도 어느덧 6위까지 치솟았다. 웃음만 가득할 법한 상황. 하지만 그 속에 가슴 한구석 풀리지 않는 답답함이 남아있었다.
K리그는 지난주 내내 몸살을 앓았다. 바이러스의 정체는 '승부조작'이었다. 사상 초유의 질병, 후폭풍은 거셌다. 브로커 2명과 선수 2명이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8명의 선수가 추가로 체포됐다. 대표팀 출신 공격수까지 포함됐다. 팬들은 물론 지도자와 동료 선수들까지 허탈했고 분개했다.
어수선한 와중 된서리를 맞은 것은 인천이었다. 아직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음에도 K리그 관계자와 팬 사이에서 '시한폭탄' 취급을 받고 있다. 승부조작의 또 다른 온상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한 방송사는 직접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달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의문의 질식사를 한 故 윤기원 인천 골키퍼의 죽음까지 더해져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워낙 민감한 사안. 조심스럽게 허정무 인천 감독에게 다가가 말을 꺼냈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담담한 어조 속에는 드러내놓고 하소연하기 힘들었던 억울함이 담겨있었다.
"그런 소문을 많이 들었다. 답답할 따름이다. 우리 팀에 어린 선수들이 많아 흔들리는 분위기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나서서 얘기할 수도 없는 상황 아닌가. 선수들끼리의 불신이 제일 걱정이다. 나 스스로도 스승과 제자 사이에 어색함이 생길까 봐 말을 아끼게 된다"
그러면서도 "더 이상 엉뚱한 얘기가 나돌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 팀 선수들은 모두 깨끗하다고 믿고 있다. 결국 검찰 조사에 모든 걸 맡기고 기다려야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인천 구단 관계자 역시 '벙어리 냉가슴'을 솔직히 고백했다. "수면 아래에서 나오는 소문은 나도 들었다"며 운을 띄웠다. "소문일 뿐이다. 말이 말로 전해지면서 전하는 사람의 불리한 점은 사라지고 당사자의 나쁜 점만 부각되지 않나"고 말하는 그의 표정엔 착잡함이 가득했다.
소문의 중심에는 '간판 공격수' 유병수도 포함되어 있다. 그가 K리그 승부조작에 참여했다는 소문은 마치 사실처럼 돌고 있었다. 이에 그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직접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런 말이 나도는지 모르겠다. 절대 아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고 단언했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수원전에서 유병수는 부상으로 교체명단에서도 제외됐다. 몸 상태를 고려한 결정이었음에도 인천은 '배나무 밑에서 갓도 고쳐쓰지 못하는 심정'이었다. 허 감독은 "병수도 마음고생이 심하다. 옆에서 보기 참 안쓰럽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관계자 역시 "(유)병수의 오늘 결장에 또 괜한 억측이 생길까 봐 조심스럽다. 선수도 무척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윤)기원이가 그렇게 된 뒤로 다들 마음 아파했는데, 자꾸 이상한 얘기가 나오니까 더 힘들었다. 특히 우리 선수단에는 어린 선수들이 많아 마음고생이 더 심했던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허감독까지 연루되어 있다고 하더라. 어이가 없었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구단 차원에서 적극적인 해명을 하는 것이 어떠냐는 물음에는 "우리도 그러고 싶다"고 한숨을 쉬었다. "차라리 누군가 드러내놓고 우리를 거론한다면 거기에 대응하면 되겠지만, 우리가 먼저 나서서 얘기하기도 그렇다"고 했다. 실제로 인천은 승부조작 의혹을 제기했던 SBS 측에 강경하게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하지만 직접 밝히기엔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처럼 비칠까봐 걱정된다는 것.
또 다른 인천 측 관계자는 "우리 팀 최근 성적이 좋다. 지난달 성남전 승리 이후 정규리그에서 5승 1무 1패다. 최근 FA컵까지 포함하면 3연승이고 이번엔 수원 징크스도 깼다. 이에 몇몇 선수는 연봉만큼의 승리수당도 챙겼다. 이런 분위기에 뭐하러 승부조작에 말려들겠나"며 답답해했다. 건강한 땀의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상황에 승부조작 연루설은 가당치 않다는 뜻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1층 기자회견실로 내려가다 흠뻑 땀에 젖은 채 라커룸으로 들어오는 인천 선수들과 마주쳤다. 수원전 징크스를 깬 덕분인지 하나같이 밝은 모습이었다. "드디어 이겼어!" 왁자지껄한 웃음과 환호성만이 복도에 울려 퍼졌다. 인위를 가하려다 실패한 자의 어두움 따위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스포츠투데이 전성호 기자 spree8@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