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의 대형화 맞춰 엔진도 커져
하루 소요 연료비도 느는데 고유가로 부담도 증가
‘기름 안쓰는 선박’ 개발에 총력
[아시아경제 채명석 기자]이제 고유가는 산업에 있어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 잡았다.
고공 평준화가 지속되는 상황이라 기름이 나지 않는 한국과 일본과 같은 공업국가에 속하는 기업들은 한방울의 기름이라도 아껴야 하는 처지인데, 배럴당 100달러를 초과한 지금의 현실은 오죽할 것인가.
ℓ당 2000원까지 폭등한 승용차용 휘발유 가격 대란에 가려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선박을 만드는 조선사나 선박을 운용하는 해운사도 기름값에 허리가 휠 정도다.
규모로는 승용차와 비교도 안되는 선박은 연료를 살펴보면 입이 쫙 벌어질 정도다. 국내 조선소에서 주력으로 건조하고 있는 8000~1만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예를 들어보겠다. 컨테이너선은 유조선이나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다른 선박과 달리 평균 25노트(시속 46km) 내외의 고속으로 운항하기 때문에 엔진도 상당히 크다.
지구상에서 만들어진 엔진 중 최대 규모인 현대중공업의 11만5000마력 엔진은 말 그대로 11만5000마리의 말이 끄는 힘과 같다. 이 정도의 출력을 내기 위해 하루에 필요한 연료의 양은 35만4000ℓ로 무게는 347t이다. 이는 대형 탱크로리 35대 분량이며, 1.5ℓ들이 PET 음료수로는 23만6000병에 해당한다.
선박 연료중 비교적 저렴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중유의 일종인 선박용 벙커C유(380CST 기준)의 가격은 지난해 평균 t당 465달러에서 올 1·4분기 평균 600달러 수준으로 약 30% 가까이 치솟았다. 이를 대입하면 11만5000마력 엔진이 하루에 사용하는 연료비만 2억2548만0600원(5월 27일 원·달러 환율 달러당 1038원 기준)이 드는 셈이다. 이 돈이면 서울시내 20평대 아파트 전세 또는 왠만한 주변 지역에서 소형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다. 만약 이 엔진이 벙커C유보다 통상 약 4배 비싼 휘발유를 쓴다면 하루 연료비는 10억원을 훌쩍 뛰어 넘는다.
이 엔진을 탑재한 선박이 울산 조선소에서 건조된 후 미국 로스엔젤리스로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7일 정도다. 여유분까지 합해 8일치의 연료를 싣는다. 탱크로리 240대에 해당하는 2776t의 연료를 연료탱크에 채워 가는 셈인데,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8억384만4800원에 달한다.
대형선박에는 추진용 메인엔진 1대와 발전용 중형 엔진 3~5대를 동시에 탑재하게 된다. 따라서 발전용 엔진을 위한 연료까지 추가할 경우 그 금액은 더욱 뛰어 오르는 셈이다.
상황을 단순화시켜 선박이 벙커C유(380CST)를 사용하며, 최근의 유가와 원·달러 환율을 기준으로 선박의 연료 소모량을 계산해 보기로 한다.
STX조선해양이 건조하는 32만t급 초대형 유조선(VLCC)은 길이가 332m, 폭 60m, 깊이 30m다. 이런 엄청난 크기의 선박은 한번 주유에 최대 약 7938t의 연료유를 실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금액으로 51억5811만2400원이다. 메인 엔진만을 기준으로 16노트의 속도일 경우 하루에 104t(6757만9200원)의 연료를 사용해 약 70일 가량을 운항할 수 있으며, 거리로는 2만6500해리(약 4만9100km)다.
이 회사가 건조한 1만3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길이 366m, 폭 48m, 깊이 30m의 규모로 갑판의 넓이가 축구장 3개 면적을 초과하는 초대형선이다. 최대 약 1만300t(66억9294만원)의 연료를 넣을 수 있다. 25노트의 속도일 경우 하루에 262t(1억7024만7600원)의 연료를 사용해 약 40일 가량, 2만550해리(약 3만8000km)의 항해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차이나막스라 불리는40만t급 초대형 광탄운반선(VLOC)은 길이가 361m, 폭이 65m, 깊이가 30m로 최대로 실을 수 있는 연료유의 양은 1만1760t(76억4164만8000원)이며, 15노트의 속도로 하루에 106t(6887만8800원)의 연료를 사용해 약 100일 동안, 3만6000해리(약 6만6700km)을 운항할 수 있다.
가히 연료비 폭탄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건조후 선주에게 인도되는 선박 연료비는 최초 조선소와 선주간 계약단계에서 선가에 포함시키거나, 선박을 인도할 때 연료비를 별도로 계약해 선주측에 사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조선소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매출에도 보이지 않게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형선박에는 추진용 메인엔진 1대와 발전용 중형엔진 3~5대를 동시에 탑재하는데, 엔진의 가격만 선박 가격의 15%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즉, 1억달러짜리 선박이라면 그 중 1500만달러(145억원)가 엔진 값이다. 일반 아파트 100채에 버금가는 가격이다.
규모나 가격 모든 면에서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채산성에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선박은 전세계 화물운송의 80%를 담당하면서도 사용하는 에너지양은 약 2%에 불과하며 탄소 배출량도 3.3% 수준이다.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인 운송수단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솟는 유류가격과 탄소 배출 억제 요구가 거세지면서 조선사나 해운업계 모두 보다 친환경적인 선박 개발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선박을 운용하는 해운사의 경우 연료비가 급등하면서 회사 전체 매출액중 연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 안팎에서 23~28%까지 오르며 채산성이 한계에 육박하면서 연료를 적게 쓰는 선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국내 조선사들도 일제히 기름을 쓰지 않는 선박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STX조선해양은 기존 연료비용을 최대 50% 이상 줄일 수 있는 신개념 선박을 개발하고 있으며, 삼성중공업도 선박 설계 개선과 프로펠러 효율을 높여 연료비를 줄이는 선박을 내놓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한국가스공사와 손잡고 가스추진선을 개발하고 있다. 기존에 개발된 엔진과 연결되는 '벙커링' 시스템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벙커링은 선박 운항을 위해 벙커나 탱크에 연료를 채우는 작업을 말한다.
<자료: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STX조선해양·성동조선해양·한진중공업>
채명석 기자 oric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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