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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색한 형돈에서 미존개오까지 5년 반이 걸렸습니다.” MBC <무한도전> ‘2010 연말정산 뒤끝공제’ 편에서 올해의 멤버로 선정된 정형돈의 수상소감이다. 지금이야 ‘대세’, ‘미친 존재감’이라는 수식어가 어색하지 않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그는 뭘 해도 안 웃긴 개그맨이라는 기묘한 캐릭터를 가졌었다. 그러다 온갖 스포츠에 능한 기능인이 됐지만 오히려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한다는 말을 들었고, 인터넷 게시판 지분율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하지만 다시 또 시간이 지나 이제는 입만 뻥긋해도, 세 손가락으로 스캔 한 번만 해줘도 다들 자지러지는 ‘미친 존재감’ 정형돈이 됐다. 최근 <무한도전>의 ‘디너쇼’에서 조관우의 ‘늪’을 부르며 모두를 뒤집어놓은 정형돈의 활약상은 그의 지난 시간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한 웃음을 넘어 감격을 주었을 것이다. 바닥에서 정상에 오르기까지, ‘무한상사’에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정형돈 사원의 지난 5년 6개월을 정리해봤다.
1. 퀴즈의 달인, 건방진 뚱보
교수 이윤석이 버티고 있었음에도 ‘거꾸로 말해요 아하’의 달인은 정형돈이었다. 도룡뇽, 예루살렘 등 어려운 단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한편, 상대방이 어떤 단어를 제시해도 날렵하게 받아치며 유일하게 ‘0박’ 기록을 보유했다. ‘퀴즈의 달인’ 편에서는 모든 멤버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고, ‘박명수가 라디오 청취자를 위해 일주일에 닭 몇 마리를 제공하는가’라는 어이없는 문제까지 맞힐 정도로 작두를 탔다. 다른 멤버들의 무지함에 맹공격을 퍼붓다가 박명수로부터 ‘건방진 뚱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똑똑하고 웃긴 인재라 확신한 순간, ‘퀴즈의 달인’은 폐지됐고 <무한도전>은 두뇌싸움이 아닌 캐릭터싸움으로 승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형돈은 웃음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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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엄마, 당분간 많이 못 나올 것 같아...
하하와 ‘친해지길 바라’ 특집을 통해 쇼의 리얼리티에 기여하는가 싶더니, 다른 멤버들의 캐릭터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좀처럼 입지를 굳히지 못했다. 결국 ‘농촌특집’에서 자학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 <무한도전>에서 많이 안 나온다고 걱정 많이 했는데 ‘형돈아 놀자’랑 ‘친해지길 바라’ 했잖아. 근데... 또 당분간 많이 못 나올 것 같아. 한두 달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으니까 <스펀지>랑 번갈아 봐도 돼...”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편지였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이런 어색함과 ‘못웃기는 캐릭터’는 <무한도전> 을 위한 설정이기도 했지만 어느새 정형돈은 자신감 없는 캐릭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개편 때마다 애간장이 타고 인터넷 게시판 접속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살얼음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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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족발당수로 날아올라!
정준하 키보다 훨씬 높은 줄넘기를 풍차돌리기로 넘고 처음 해보는 양궁을 100점 맞으면서 ‘웃기는 것 빼고 다 잘하는 기능인’ 캐릭터가 만들어졌지만, 사실 예능인에게는 치명적인 별명이다. 그런 정형돈을 수렁에서 건져 올린 게 바로 온 몸을 던진 발차기였다. ‘우리 미팅했어요’ 편에서 태양의 ‘나만 바라봐’ 춤을 추던 노홍철이 저질 복근을 공개하는 순간, 정형돈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족발당수로 응징했다. 정형돈을 투명인간 취급하던 멤버들은 “정형돈이 보인다”고 극찬했고 김태호 PD마저 “분기마다 한 번씩 웃긴다”고 인정했다. 더 이상 내려갈 곳 없던 그의 자존심과 존재감이 조금씩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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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제야 좀 웃기네
확 치고 올라온 첫 번째 지점이 바로 2009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였다. 에픽하이와 결성한 ‘삼자돼면’이 중간평가에서 발표한 ‘전자깡패’는 어떤 의미로든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이었다. 힙합의 소울을 가득 실어 ‘마더 파더 깁 미 어 원 달러, 엄마 아빠 1200원 주세요, 엘리뇨 라니뇨 WTO Yeah~’라 외치는 정형돈의 모습은 말 그대로 빵 터졌다. 본무대에서는 ‘바베큐’를 부르며 ‘전자깡패’가 사라질 뻔했으나, 임팩트 있는 가사 덕분에 추후 음원으로 발매됐다. 이 기운을 받아 레전드 급 유행어 ‘6학년이 웃겨?’를 제조했고, 길과 함께 뚱스를 결성해 히트곡 ‘고칼로리’를 탄생시켰다. 심지어 랩도 잘하는 정형돈의 재능이 힙합의 공격성을 통해 과감한 자신감으로 이어졌고, 정형돈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웃길 수 있는지 감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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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친 존재감 개화동 오렌지족
이젠 뭘 해도 다 된다. 하다못해 5년 된 낡은 크로스백과 은갈치 양복 차림에 12년 된 ‘멸종위기’ 구두를 구겨 신어도 패션피플로 칭송받는다. 그의 은갈치 패션은 ‘시크릿 바캉스 특집’ 편에서 정식 드레스코드로 채택됐다. 하지만 그것들을 걸친다고 해서 모두 ‘미존개오’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방 버클에는 곰팡이가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있어야 하고 가방끈은 언제나 심장 쪽을 향하게 하며 비대칭 앞머리는 선글라스로 깔끔하게 넘겨야 한다. 이후 패션에 자신감이 붙은 정형돈은 과감한 홍대패션에 목발을 믹스 매치해 연말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시크하게 한 마디 내뱉었다. “내가 패션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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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10년 무한도전 올해의 멤버
누가 뭐래도 장기 프로젝트 ‘WM7’의 최대 수혜자는 정형돈이었다.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긴장한 탓에 백 스테이지에서 구토 증세를 보인 정형돈, 팬들의 환호로 가득한 경기장에서 싸이가 열창하는 ‘연예인’. 두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정형돈은 온 몸을 바쳐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직업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보여줬다. 그렇게 시청자들을 웃고 울린 결과, ‘연말정산 뒤끝공제’ 편에서 시청자가 인터넷 투표로 뽑은 2010년 <무한도전> 올해의 멤버 1위로 선정됐다. 이 때부터였던 것 같다. 정형돈의 자신감이 거만함으로 넘어가던 시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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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드래곤, 보고 있나?
이제 모든 주도권은 정형돈이 쥐고 있다.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다. 팔짱을 끼고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지 드래곤을 향해 머플러 색깔과 반지 개수를 지적하면 어떤가. 당분간 인터넷 끊으면 그만인 것을. 미성을 뛰어넘는 마성으로 조관우의 ‘늪’을 막 불러도 상관없다. 정재형과 스윗소로우가 서로 파트너 하겠다고 달려든다. “누구든지 한 명은 똥 밟는다잉~”이라고 경고했던 그가 이제는 “준하형, 누구 줄까?”라고 거들먹거리는 처지가 됐다. 정형돈이 입을 떼는 순간,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 길아, 보고 있나? 이게 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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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가온 thirteen@
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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