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벌써 11년째다. 할리우드에서는 상당히 저 예산인 38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미국에서만 무려 그 네 배에 육박하는 1억4400만 달러의 특급 흥행을 기록한 '분노의 질주' 1편이 나온 것이 2001년의 일이다. 당시 주목 받던 신인이던 빈 디젤과 폴 워커는 이 영화로 단번에 전세계가 주목하는 특급 스타로 떠올랐고, 신인 감독 롭 코헨은 이후 '트리플 엑스' '스텔스' 등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거물 감독과 프로듀서가 되었다.
이런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할리우드 메인 스튜디오가 가만 놔둘 리 없다. 2003년 2편을 시작으로 무려 두 차례 더 '분노의 질주' 속편이 극장에 나왔다. 심지어 2006년에 나온 통산 세 번째 시리즈 '패스트 & 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는 원년 멤버 없이 모두 새로운 배우들로 캐스트를 채우기도 했다. 생명력을 잃고 망해가던 시리즈의 운명을 되돌린 것은 2009년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Fast & Furious'로, 국내에서는 1편과의 연결 고리를 위해 '디'가 아닌 '더' 오리지널이라는 틀린 영문법의 개봉 제목을 붙이는 해프닝도 있었다) 빈 디젤과 폴 워커가 다시 합류한 이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3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이며 기사회생했다.
시작이 길었다.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 Fast Five'는 4편의 영광을 이으려는 의도가 확실한 영화다. 빈 디젤과 폴 워커, 조나다 브루스터 등 원년 멤버에 왕년의 WWE 스타 더 록(드웨인 존슨)이 합류했다. 3, 4편의 저스틴 린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으며, 제작비는 1편보다 무려 네 배가 늘었다. 격투, 자동차와 헬기 추격, 총격전 등 액션 블록버스터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액션이란 액션은 다 나온다. 이도 넉넉해진 제작비 탓에 더 실감나고 화끈해졌다. 극 중 완전히 '박살' 나는 브라질 '리우' 데자네이루와 푸에르토리코, 미국 애틀란타 등 로케이션도 '때깔' 좋은 화면을 보여주는 데 일조한다. 우람한 식스팩과 근사한 마스크로 무장한 남자들과 아찔한 몸매의 여자 배우들은 확실한 눈요기 감이다.
이제 쓴소리를 할 차례다. 화려한 외피에도 불구하고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의 드라마는 헐겁고 나른하고 하품 난다. 드라마가 마치 액션 사이에 위치한 '시간 때우기'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다. 연달아 다채로운 액션이 '빵빵' 터지는 화면과는 달리 드라마는 러닝 타임 130분의 2/3를 넘겨도 도무지 앞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 도대체 어떤 드라마길래? 영화 선택에서 꽉 찬 드라마 전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 영화를 보지 않는 편이 낫겠다. 사실 이 영화에서 묵직한 드라마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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