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대개 '공상 과학 영화(Science Fiction Film)'이라는 이름에서 우리들은 과학적 논리를 기초로 한 이야기를 천문학적인 제작비와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포장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을 떠올리기 쉽다. 조지 루카스의 '스타 워즈' 6부작(사실 이 작품을 과학적 논리가 부족해 진정한 의미의 SF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이나 스필버그의 '이티' 혹은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3부작 정도를 이 장르의 대표작들로 거론할 수 있을 거다.
이번 주 개봉된 마크 로마넥 감독('스토커')의 '네버 렛 미 고 Never Let Me Go'는 이런 공상 과학의 트렌드에서는 한참 벗어나 있다. 그 흔한 특수효과도 별로 없다. 배경은 1962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근 과거 시점이다. 영화의 중심 내러티브는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과 이별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미국 할리우드가 아닌 '노팅 힐' '러브, 액츄얼리' 등 로맨틱 코미디의 명가인 영국의 워킹 타이틀이 제작했다. 하지만 '네버 렛 미 고'는 분명히 공상과학의 영역이 얼마나 장대한지를 입증하는 공상 과학 영화의 적자다.
일본계 영국인 카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국내에도 출간되어 있다) 원작의 '네버 렛 미 고'는 인류의 평균 수명이 100살을 넘겼다는 가정 하에 인간들에게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서 태어나고 존재하며 성장하다 눈을 감는 복제인간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의 세 주인공은 외부 세계와 철저히 격리된 영국 헤일셤의 기숙 학교 학생 캐시(캐리 멀리건 분)와 토미(앤드류 가필드 분), 루스(키라 나이틀리 분)다. 생각이 깊고 자신의 내면을 잘 드러내지 않는 캐시는 동년배 토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활달하고 도발적인 성격의 루스가 먼저 토미를 채간다. 그렇게 아이들은 남자와 여자로 변해가고 16년의 시간이 흐른다. 장기 기증 안내자가 된 캐시는 각각 세 번째와 두 번째 장기 기증을 기다리고 있는 루스와 토미와 조우한다.
'네버 렛 미 고'는 자신의 몸 속 내장들을 하나 둘 떼어주는 것을 운명으로 여기고 삶을 체념하는 세 복제인간들의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맞추며, 진정한 인간성이 무엇인지에 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그저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영위하고 싶었던 세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가운 수술실 안 심장 박동기의 '플랫 라인 Flat Line'뿐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끊임없이 자신의 불운을 불평하며 너무나 손쉽게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작가와 감독의 질문이다.
태상준 기자 birdc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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