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북한이 국제사회는 물론 남측 시민단체에 연일 식량지원을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지만 우리정부는 대화는 수용하겠지만 식량지원은 신중해야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4일 "남측 시민단체 어느 곳에 식량지원을 했는지는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일부에서는 북측의 요청을 받고 정부에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라며 "정부의 입장에서는 구호품에 대한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 한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은 변함없다"고 말했다.
남측 시민단체들은 북측의 식량지원을 요청받고 본격적인 지원준비에 나서고 있다.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이하 북민협)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등 10여 개 회원단체 실무자와 함께 민화협 관계자를 만나 개별 단체들의 대북지원을 협의한 뒤 북민협 차원에서 협력방안도 함께 논의하기 위해 통일부에 북한주민 접촉신청을 했다.
북민협은 7일 중국 선양에서 북한 민족화해협의회 관계자들과 만나 대북지원방안을 논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5대 종단 종교인모임도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취약계층에 한정하지 않는 대북 인도지원 허용을 촉구할 예정이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이르면 이번주 안에 대북 식량지원을 할 수 있도록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유진벨재단이 3억3000여만원 어치의 결핵약에 대해 정부의 대북 반출승인을 받은 데 이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도 영양빵 7만5000개와 콩우유 3만7000봉을 함경북도 온성의 33개 유치원 등에 보내는 계획을 승인받았다. 월드비전도 황해북도 중화군에 경기도가 기증한 1억원 상당의 영양식품을 전달하고자 통일부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데이비드 앨턴 영국상원의원의 초청으로 영국을 방문한 최태복 북한 최고인민회의의장도 "앞으로 두달이 고비"라며 "유엔 세계식량계획(WFP)가 밝힌대로 600만명이 당장 위기에 처해 시급한 불을 꺼야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WEP의 국장급 간부를 포함한 대표단 일행은 지난달 30일 북한의 취약계층에 대한 식량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바 있다. 이 자리에서 대표단은 통일부 서호 교류협력국장과 외교통상부 박은하 개발협력국장, 김홍균 평화외교기획단장 등을 잇따라 만나 "북한 식량실태에 대한 조사 결과 영유아, 임산부, 노인 등 취약계층 610만명을 위한 식량 43만4000t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지원에 대한 연일공세에 우리정부는 미온적인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분배 투명성까지 확보되지 않아 정부차원의 식량지원은 힘들다"고 말했다. 특히 천안함 폭침사태와 연평도 포격도발을 '자위적 조치'라는 북한의 입장에 변함이 없는 한 식량지원불가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시민단체와 국제단체가 식량지원에 대한 승인을 받을 경우 북한은 나흘 뒤에 열리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4차회의에서 식량지원을 바탕으로 '경제력 강화'공을 후계자인 김정은에게 돌릴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노동당의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받지만 국방위원회 및 내각 인선, 각종 법령의 제·개정, 경제정책 수립 및 예산 편성 등의 권한을 갖고 있어 회의 결과는 북한 권부의 흐름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 회의에서 김정은이 막강 권력기관인 국방위의 부위원장에 진출할 수도 있고, 조명록 전 군 총정치국장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제1부위원장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국가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 등을 추진할 정치·제도적 환경을 마련해 내년 강성대국의 해를 앞두고 경제 살리기를 내세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지원받은 식량지원으로 민심을 달랜다는 계산이다.
통일연구원 전현준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회의에서 외자유치를 위한 새로운 법령 제정과 경제특구 지정 등의 조치가 나올 수도 있다"며 "후계체제가 급속히 추진되고 있는 만큼 이를 공고화하기 위해서라도 인민경제 상황이 이른 시일 내에 향상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낙규 기자 if@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