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3·22 부동산거래 활성화대책'이 발표된지 나흘. 그사이 강남권에선 급매물이 사라지고, 수 천만원씩 매매 호가가 올랐다지만 실거래엔 아직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게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정작 이번 대책으로 불이 붙은 건 실거래가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의 논쟁이다. 정부가 대책의 뼈대로 삼은 '취득세 50% 인하안'을 두고 각 지자체가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서다.
취득세는 지방 재정에 큰 영향을 주는 대표적인 지방세다. 이걸 낮추면 지방 재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는 게 지자체들의 입장이다. 서울시 등 각 지자체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재정을 고려하면, 취득세가 아니라 국세인 양도소득세를 내리는 게 순서"라면서 "세수 보전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5일 오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공공기관 선진화 워크숍에 참석해 "주택 거래에 따른 양도세를 낮추려면 기본 세율을 내리거나 다주택자 중과세율을 인하해야 하지만 어느 쪽을 봐도 현실적으로 더 이상 양도세를 내릴 방법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양도세 기본 세율은 근로소득세 기본 세율과 같다"면서 "양도세 세율만 조정하면 세율이 근로소득세 세율보다 더 낮아져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윤 장관은 이 때문에 "근로소득세율을 먼저 내리지 않는 이상 양도세 세율만 낮추는 건 현실적으로 생각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울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율 역시 내년말까지 중과세율이 아닌 기본세율을 적용하기로 한 상태여서 내리고 싶어도 더 내릴 여력이 없다"며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양측의 논리 싸움이 팽팽한 가운데 전선은 보다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동산을 사고 판 거래자들이 "정부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져 손해를 봤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데다 매매 계약을 마친 거래자들도 대금 치르는 시점을 미루면서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적게는 수 백만원에서 많게는 수 천만원까지 세금을 줄일 수 있는 호기이기 때문이다.
정부 대책 이후 극심한 혼란이 거듭되는 사이 정치권도 거들고 나섰다. 민주당 등 야당은 지자체의 편에 서서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렇게 되면 다음달 임시국회에서 취득세 인하 문제에 방점을 찍으려던 정부의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상황을 지켜보며 거래를 미루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시장을 살려보자고 도입한 대책이 도리어 시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에 '주택 취득세 경감에 따른 지방재정 보전 검토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려 지자체와 접점을 모색하고 있지만, 결론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선(先)조치 후(後)보전'을 주장하는 정부와 달리 지자체들은 '선보전 후조치'를 원하고 있어서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자체 세수 보전은 전례가 없던 일인데다 예상되는 세수 감소분 등을 추산하기도 어려워 연내에는 보전 규모나 방식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올해 거래 상황을 봐 내년에 사후 보전을 한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지만, 논의 과정을 통해 어떤 합의점을 찾을지 예단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박연미 기자 chang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